현은숙-붉은비

2021.06.02 20:28

미주문협 조회 수: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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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비

                                   현은숙

 

늦은 사랑이 해풍 위에 말없이 떠 있다

꽃잎들은 엎드린 채

몸을 흔들어 침묵을 가르고 있다
 

나 왔어

엄마가 여기 온 이후로

난 눈물이 안 나

 

햇살이 들고 있는 창 앞에 앉아

따스해서 좋다 나 이럴 때 행복해하던

혼자 말은 혼자서 가버렸다

 

행복해” 가 환청으로 들리기 시작하면

댐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길에는 분홍 꽃들이 나와 딩굴 뎅굴 굴러다니고,

 

모양내는 것도 때가 있어

차리고 다녀라 하던 말이 떠올라

미장원으로 갔다

머리를 헹구고 의자에 앉았다

 

거울 속 한구석벌레가 날고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젖은 눈으로

붉은 비가 내렸다

둑이 터지고 강물이 넘쳤다

 

나를 완강히 저지하던 경계의 거울이 물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