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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불로에서 만난 여우

2008.09.29 09:30

유봉희 조회 수:1748 추천:200



디아불로에서 만난 여우
유봉희


나무와 들풀이 따라오기를 포기한 산등성
송곳니 같은 바위들만 높게 낮게 앉아서
바람을 잘게 부수고 있다
바위 뒤에서 빠른 속도로 한 물체가 지나간다
조금 후 서서히 몸체를 드러낸다
길게 부풀려진 꼬리, 뾰족한 얼굴
저것은 여우다

돌 하나 집어 던지면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거리
그러나 그의 걸음은 너무나 태연하다
잠깐 맞춘 눈도 고인 물처럼 흔들림이 없다
저 조용한 몸짓은 믿음일까 본성일까
인디언들이 성인식을 올리는 밤이면
도깨비불로 타올랐다는 이 산등성이에서
인디언을 지켜보던 불붙는 야성의 눈빛
일정 거리를 지켜 서성거리던 그 걸음
이제는 볼 수 없다

홀연히 끌어 당겨진
그와 나와의 거리
그러나 그의 마음 한자락, 한 치 앞도 읽혀지지 않는다
오늘, 태양이 제 몸의 한 부분을 터트려
붉은 하늘을 연다는 밤
과연 그는 그의 눈에 그 불을 옮겨 담을 수 있을까
나는 짐짓 그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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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x I Met on Mt. Diablo
   Eu, Bonghee / 英譯 · 고창수
On a mountain-ridge where trees and weeds
have given up the act of following,
Only rocks resembling canine teeth sit high or low,
Crushing the wind into little pieces.
Something races fast behind the rocks,
A little later gradually revealing its body.
A long bloated tail, and a pointed face -
That′s a fox
At a stone’s throw.


But its stride is so stable and natural;
Its eyes I just looked into are motionless
Like pooled water.
Would that calm gesture be faith or instinct,
I wonder?
On this mountain ridge
Where American Indians are said to have conducted
initiation rites causing fairy fires to rise up,
The wild eyebeams watching the American Indians.
I think of the steps
Loitering at a certain distance.


The distance shortened between him and me.
But his mind� skirt I cannot read an inch ahead.
Today, when the sun explodes a part of his body
To open up the purple sky,
Could he transfer the fire in his eyes?


I surreptitiously walk away
Where I can’t se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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