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똥밭에 굴러도

2012.03.10 02:36

이주희 조회 수:1293 추천:173




개똥밭에 굴러도 / 이주희







내가 널 언 땅에 묻지 않았듯이



너도 이제는 나를



시린 가슴에서 꺼내줘



가슴에 묻으면 에인다 해서



유리병에 꽃씨처럼 너를 담아



태평양을 건너왔잖아



아무리 남은 세월 덤으로 살다 간다지만



산천이 서너 번 뒤 바뀌는 동안



고향으로 머릴 두고 많이도 울었잖아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터널과도 같은 어둑한 방안을 전등불로 밝힐 때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하나 둘 물방울이 떨어질 때



편지함에 들어온 고지서도 반갑게 느껴질 때



빗방울이 후드득 창문을 두드릴 때



못 엇박아 아픈 손 움켜쥐고 벽보고 한숨 질 때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낯설어 보일 때



우두커니 서서 황홀한 저녁노을을 바라볼 때



너는 그저 천상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잖아



자신을 아끼기엔 너무 바쁜 세상이라서



그래서 널 저 푸른 바다에 띄워 보내주려는 거지



할미꽃 피어있는 곳을 지나가더라도



차마 기억이 울며불며 폭풍의 눈으로 떠밀려가더라도



절대로 뒤 돌아보지도 말아



잘 가 훠어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잖아



이제 난 괜찮아



아주 썩 괜찮아



-소리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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