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똥밭에 굴러도
2012.03.10 02:36
내가 널 언 땅에 묻지 않았듯이
너도 이제는 나를
시린 가슴에서 꺼내줘
가슴에 묻으면 에인다 해서
유리병에 꽃씨처럼 너를 담아
태평양을 건너왔잖아
아무리 남은 세월 덤으로 살다 간다지만
산천이 서너 번 뒤 바뀌는 동안
고향으로 머릴 두고 많이도 울었잖아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터널과도 같은 어둑한 방안을 전등불로 밝힐 때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하나 둘 물방울이 떨어질 때
편지함에 들어온 고지서도 반갑게 느껴질 때
빗방울이 후드득 창문을 두드릴 때
못 엇박아 아픈 손 움켜쥐고 벽보고 한숨 질 때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낯설어 보일 때
우두커니 서서 황홀한 저녁노을을 바라볼 때
너는 그저 천상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잖아
자신을 아끼기엔 너무 바쁜 세상이라서
그래서 널 저 푸른 바다에 띄워 보내주려는 거지
할미꽃 피어있는 곳을 지나가더라도
차마 기억이 울며불며 폭풍의 눈으로 떠밀려가더라도
절대로 뒤 돌아보지도 말아
잘 가 훠어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잖아
이제 난 괜찮아
아주 썩 괜찮아
-소리비에서-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 | ○ 낱알 하나 | 이주희 | 2012.10.18 | 1197 |
21 | ○ 팔월의 진주 | 이주희 | 2012.05.29 | 1829 |
20 | ★ 설야(雪夜) | 이주희 | 2013.01.28 | 1121 |
19 | ○ 중간 | 이주희 | 2013.01.09 | 1093 |
18 | ★ 계사(癸巳)해 기도 | 이주희 | 2012.12.28 | 1314 |
17 | ★ 겨울 여행 1 | 이주희 | 2012.12.20 | 1142 |
16 | ○ 짜발량이 | 이주희 | 2012.05.29 | 1097 |
15 | ○ 팜 스프링스 | 이주희 | 2012.08.24 | 4707 |
14 | ◈ 여름마당 | 이주희 | 2012.08.03 | 1348 |
13 | ◈ 어쩌라고 | 이주희 | 2012.05.18 | 1393 |
12 | ○ 누구세요 | 이주희 | 2012.05.11 | 1240 |
11 | ○ 낱알 다섯 | 이주희 | 2012.03.10 | 1177 |
» | ○ 개똥밭에 굴러도 | 이주희 | 2012.03.10 | 1293 |
9 | ★ 바람과 모래 | 이주희 | 2012.02.11 | 1181 |
8 | ○ 동거 | 이주희 | 2011.12.01 | 1220 |
7 | ★ 임진(壬辰年)찬가 | 이주희 | 2011.12.14 | 1259 |
6 | ★ 모래알 | 이주희 | 2011.11.14 | 1169 |
5 | ○ 작은 그늘 | 이주희 | 2011.10.10 | 1225 |
4 | ○ 바람 | 이주희 | 2012.04.14 | 1070 |
3 | ◈ 깡패 떠나가다 | 이주희 | 2011.10.01 | 2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