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김양수
2010.03.08 11:48
첫 수업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양수
글쓰기에 대한 인연을 돌이켜 보면 오랜 기억 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숙제로 쓴 시(詩)가 한 편 있다. 제목이 ‘아침 이슬'로 기억된다. 어린 나이에 낑낑대며 쓴 시가 나쁘지는 않았던지 숙제검사를 하시던 선생님이 물었다.
“너, 이 시 베꼈지?”
내가 썼다는 것을 믿지 않는 말투였다. 숫기가 없던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네!”
하고 대답했다. 그것이 글쓰기에 대한 특별한 기억의 전부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하는 문과와 이과 선택의 순간이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에게서 특별한 조언을 구할 길이 없던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한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이과를 선택했었다. 이공계로 진학하면 손쉽게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글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이것을 계기로 문학과 글쓰기에 영영 이별을 고한 것이다. 그 뒤로 십여 년이 흘러 나는 대한항공(KAL)에 입사를 하였다. 회사에서는 문서와 보고서, 기획서 등 글을 써야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글 쓰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흥미마저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글 쓰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관련 업무들이 내게 맡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즐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 뒤로 내 마음속에 한 그루 조그만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글을 써보자. 종류는 상관없다. 무슨 글이든 써보자.’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설, 시, 수필, 경영, 금융 등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그리고 글쓰기도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겨우 어린아이 걸음마 수준이다. 가끔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다. 특별할 것이 없는 글쓰기 훈련의 하나다. 그리고 일기를 쓴다. 특별한 일기다. 미래 어느 날 내 글을 쓰기위해 나의 경험과 생각, 기억들을 모아 두는 일종의 글감창고다.
2년 전 우리 지역 모 일간지를 보다가 문득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강좌에 관한 내용이었다. 많은 수강생들과 졸업생들이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고 책을 내는 등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기사를 접할 당시에는 곧 등록하여 시작할 듯 조급함이 있었다. 하지만 멀리 전주라는 거리가 문제였다. 한참 일할 나이에 1주일에 그것도 주중에 하루 정도는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희생이 따라야 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때를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때가 드디어 무르익은 것이다.
오늘이 첫 수업일이다. 남원에서 전주로 출발해야하는 나는 제 시간에 도착할 마음으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때마침 마누라는 멀리 서울로 출장 중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들의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등교준비를 도와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 한 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고픈 배를 안고 버스를 탔다. 승용차로 갈 수도 있으나 버스 안에서 책이라도 읽을까 해서 버스를 탔다. 버스는 독서할 시간을 벌어줘서 자주 이용한다. 약도를 손에 들고 떠났지만 초행길이라 목적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묻는 등 약간의 수고 끝에 겨우 평생교육원을 찾았다. 다행히 시작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밝게 미소 짓는 태양과 함께 첫 등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만나는 수강생들과 선생님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뜬 가슴이 콩닥거렸다. 강의실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모두들 낯설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 앞에 나서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도 두서없이 나를 소개했다. 귀를 기울여 들어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대체로 나보다 연장자들이 많았다. 수필도 배울 겸 뜻 맞는 친구도 사귈 요량이었으나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무슨 소용인가. 나이가 나보다 많아도 동창인 걸.
학창시절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에 대해 배웠는데 오늘 또 들었다. 그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비법으로 삼다(三多)를 설파했다. 삼다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이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다보면 좋은 글을 쓰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수필을 배우러 온 첫 날, 이 삼다가 내게 새로운 글쓰기 지침으로 가슴에 둥지를 틀었다. 선생님께서 ‘수필아, 고맙다’라고 말했다. 자기 인생에서 수필과 맺은 인연으로 얻은 보람이 큰가 보다. 나도 글쓰기에 대한 뿌듯함과 고마움으로 자랑할 날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미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왕 배우려 시간과 마음을 내었으니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소의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더디고 느리지만 언젠가 도착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겠는가. 내 나이 사십대, 하지만 오늘부터 십대 후반으로 돌아간다. 문학소년을 꿈꾸며 인생의 새 희망을 세워본다.
여러 권의 책들을 얻었다. 선배들의 글들이 수록된 수필집과 문학지들이다. 그들의 활동에 부러움이 크다. 한 아름 안고 오는 책의 부피만큼 큰 희망을 품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2010.3.8.)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양수
글쓰기에 대한 인연을 돌이켜 보면 오랜 기억 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숙제로 쓴 시(詩)가 한 편 있다. 제목이 ‘아침 이슬'로 기억된다. 어린 나이에 낑낑대며 쓴 시가 나쁘지는 않았던지 숙제검사를 하시던 선생님이 물었다.
“너, 이 시 베꼈지?”
내가 썼다는 것을 믿지 않는 말투였다. 숫기가 없던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네!”
하고 대답했다. 그것이 글쓰기에 대한 특별한 기억의 전부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결정하는 문과와 이과 선택의 순간이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에게서 특별한 조언을 구할 길이 없던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한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이과를 선택했었다. 이공계로 진학하면 손쉽게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글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이것을 계기로 문학과 글쓰기에 영영 이별을 고한 것이다. 그 뒤로 십여 년이 흘러 나는 대한항공(KAL)에 입사를 하였다. 회사에서는 문서와 보고서, 기획서 등 글을 써야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글 쓰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흥미마저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글 쓰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관련 업무들이 내게 맡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즐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 뒤로 내 마음속에 한 그루 조그만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글을 써보자. 종류는 상관없다. 무슨 글이든 써보자.’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설, 시, 수필, 경영, 금융 등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그리고 글쓰기도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겨우 어린아이 걸음마 수준이다. 가끔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다. 특별할 것이 없는 글쓰기 훈련의 하나다. 그리고 일기를 쓴다. 특별한 일기다. 미래 어느 날 내 글을 쓰기위해 나의 경험과 생각, 기억들을 모아 두는 일종의 글감창고다.
2년 전 우리 지역 모 일간지를 보다가 문득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강좌에 관한 내용이었다. 많은 수강생들과 졸업생들이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고 책을 내는 등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기사를 접할 당시에는 곧 등록하여 시작할 듯 조급함이 있었다. 하지만 멀리 전주라는 거리가 문제였다. 한참 일할 나이에 1주일에 그것도 주중에 하루 정도는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희생이 따라야 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때를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때가 드디어 무르익은 것이다.
오늘이 첫 수업일이다. 남원에서 전주로 출발해야하는 나는 제 시간에 도착할 마음으로 아침부터 분주했다. 때마침 마누라는 멀리 서울로 출장 중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들의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등교준비를 도와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 한 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고픈 배를 안고 버스를 탔다. 승용차로 갈 수도 있으나 버스 안에서 책이라도 읽을까 해서 버스를 탔다. 버스는 독서할 시간을 벌어줘서 자주 이용한다. 약도를 손에 들고 떠났지만 초행길이라 목적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 묻는 등 약간의 수고 끝에 겨우 평생교육원을 찾았다. 다행히 시작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밝게 미소 짓는 태양과 함께 첫 등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만나는 수강생들과 선생님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뜬 가슴이 콩닥거렸다. 강의실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모두들 낯설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라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 앞에 나서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도 두서없이 나를 소개했다. 귀를 기울여 들어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대체로 나보다 연장자들이 많았다. 수필도 배울 겸 뜻 맞는 친구도 사귈 요량이었으나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무슨 소용인가. 나이가 나보다 많아도 동창인 걸.
학창시절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에 대해 배웠는데 오늘 또 들었다. 그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비법으로 삼다(三多)를 설파했다. 삼다란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이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다보면 좋은 글을 쓰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수필을 배우러 온 첫 날, 이 삼다가 내게 새로운 글쓰기 지침으로 가슴에 둥지를 틀었다. 선생님께서 ‘수필아, 고맙다’라고 말했다. 자기 인생에서 수필과 맺은 인연으로 얻은 보람이 큰가 보다. 나도 글쓰기에 대한 뿌듯함과 고마움으로 자랑할 날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미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왕 배우려 시간과 마음을 내었으니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소의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더디고 느리지만 언젠가 도착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겠는가. 내 나이 사십대, 하지만 오늘부터 십대 후반으로 돌아간다. 문학소년을 꿈꾸며 인생의 새 희망을 세워본다.
여러 권의 책들을 얻었다. 선배들의 글들이 수록된 수필집과 문학지들이다. 그들의 활동에 부러움이 크다. 한 아름 안고 오는 책의 부피만큼 큰 희망을 품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201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