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때

2005.11.14 23:14

김영교 조회 수:444 추천:98

새벽 예배 후 매일 규칙적으로 공원을 산책한다. 우리 동네는 야생 동물들이 무척 흔하다. 자연 생태계 보존 공원(Marsh)이 한 블락 건너에 있기때문이다. 땅콩을 손에 쥐고 있으면 물어가는 불르버드, 햇빛에 신비한 여러 색깔을 발하는 오리들과 몸통 보다 꼬리가 더 긴 다람쥐들이 누런 잔디색에 회색스러운 꼬리털을 달고 먹이 찾아 공원 바닥을 기는듯 통통 튀며 바삐 돌아다닌다. 아침에 걷기를 시작하면 잔디밭에 있던 이 작은 가족들은 나무 밑으로 도망가곤 하는데 줄행랑이야 말로 본능적 유일한 무기같아보였다. 귀여워서 처음엔 먹이를 주며 장난삼아 쫓아가 친해보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재미로 하지만 약자인 이 가족들은 생명을 건 달음질이려니 그 생각에 미치자 눈길 만 주고 걷기만 한다. 그 날도 차에서 내려 주차장을 지나 풀섶으로 걸어가는데 샛길 옆 풀밭 나무둥치 옆에 오리 한 마리가 보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되면 도망가려니 했는데 내 얼굴만 쳐다보며 움직일 기색이 아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시 쳐다 보아도 부동자세였다. 동그랗게 돌출된 놀란 눈으로 나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며 떨고 있는듯 보였다. 순간 나는 보았다. 다가오는 위기에서 본능적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두려움과 함께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간절함,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절절한 그 무엇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와 닿았다. '해꼬지를 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호소하는듯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숨 죽이며, 땅만 내려다보고 속도를 늦추어 하루 운동치만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때 맞게 온 손자를 유모차에 태워 급히 다시 가 본 그 자리에 오리는 없었다. 오리가 어디 아펐었나, 웬일인가 궁금해서 그 둘레를, 그가 앉았던 자리를 살펴 보았다. 처음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 체온이 아직도 따뜻한 그리고 여기 저기에 검부랭이 속에 피같은 게 묻어있는 알 두개, 알을 품고 있었구나! 그래서 먹이를 줘도 한눈도 안팔았구나 싶어 땅 속 작은 웅덩이 굴에 까지 애미 오리의 체온이 짚혀왔다. 불쌍한 것! 모성을 쏟아 산고를 겪고 있었구나, 도망가지도 않고 위기감에 떨면서 애원의 눈빛이 설명되어졌다. 살짝 들여다 보고는 예전과 똑 같이 덮어 놓았다. 이튿날 호수 옆으로 갔다. 어떤가 궁금해서 나가보니 놀랍게도 작은 보금자리는 비어 있었다. 인간의 손때를 버리고 밤새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사람냄새 피운 걸 사죄하고 싶었다. 두려움에 찼던 그 눈은 위험을 감수하며 생명을 지키는 산고 다음의 희생이었다. 그 헌신을 목격한 현장, 생명질서를 지키는 힘을 보았던것이다. 아름다웠다. 감격이었다. 모든 생명체의 가치가 아주 귀하게 다가왔다. 인간 빚음에 심히 기뻐한 창조주의 마음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것 같았다. 오리의 원정출산이 내 발걸음을 깨달음으로 확대시킨 것은 선물이었다. 마음의 키가 쑥 자란 기분이다. ♬모차르트/바이올린 소나타G장조K301 2악장Allegro
아이작 스턴(Vn)
예핌 브롱프만(P)
☆편집 루치니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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