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사과나무 / 김영교

2011.08.19 20:15

김영교 조회 수:731 추천:156

사과를 먹다가 문득 유명한 사과 생각이 났다. 아담의 사과, 뉴톤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이다.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사과 시리즈에 우리 집 사과를 보태어 재미있을것 같은 4대 사과 시리즈를 만들어 본다. 과실수 정원수 신문광고를 보고 선택된 사과나무, 뒤뜰에 한 그루 심었다. 생선뼈를 묻어주고 하루 종일 머물다 가는 햇빛 덕분에 벌써 12개나 사과 알을 품었다. 가지 무게를 작대기로 고여 주고 정성을 드렸더니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바라보는 재미를 더해줬다. 이제 뒤뜰의 사과나무는 의미 있는 삶의 창이 되어주 고 있었다. 겨울을 견디고 어두운 밤을 통과한 사과라야 달다고 한다. 사과나무 앞에 설 때마다 추운 투병의 겨울을 지나왔기에 달디 단 성품을 향해 성숙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사과가 되고 싶다고 읊조렸다.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한번 이상 다가가 필요할 때마다 보살피고 다독거려 주는 친구가 되었다. 이제 사과나무는 일찍 깨는 농부의 과수원 지기가 되어 오히려 나를 키워주고 있다. 내가 정성스레 심은 것은 가능성이었고 건강에의 꿈이었다. 함께 잘 자라자고 약속도 주고받았다. 결실을 거두기 전부터 나는 계수를 하고 있었다. 제일 잘 익은 2개는 시어머님께, 두 아들네 집에 4개, 동생 같은 이웃 후배에게 2개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 몫으로 4개나 남게 된다. 가슴이 설레었다. 나누어 먹는 그날을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그 날은 화요일이었다. 베이 윈도우가 있는 창틀 앞에서 사과나무를 내다보니 8개 밖 에 안 보인다. 또 세어 봐도 마찬가지다. 참, 이상하다. 마침 황 집사가 다녀가는 날이라 조수로 일하는 정원사가 따 먹었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춤 출듯 행복해지는 이 주부를 위해 사과는 12개 고스란히 나무에 붙어 있어야했다. 볼그스름 수줍게 익은 내 가족...속이 상해왔다. 4개나 따 먹다니... 뒤뜰로 들어오는 철문 열쇠는 정원사만 가지고 있으니 틀림없었다.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자기 종업원들은 남의 과일에 손대는 일이 없다는 황 집사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종업원들 단속 잘 지킬 것을 당부하는 내 할 말만 일렀다. 어떤 바보라도 사과 속의 씨는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러나 씨 속의 사과 수는 하늘만이 알고 있다 하지 않는가. 사과 씨를 헤아리는 것과 심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나는 12개나 되는 사과 수는 잘 세고 사과나무를 잘 심어 키운다는 자부심은 가졌지만 어리석게도 없어진 4개에 나는 불평했고 남아있는 8개를 감사하지 않았다. 그 후 사과 알이 자꾸 줄어들었다. 7개, 드디어 5개가 남겨지자 불안한 마음에 그중 잘 익은 것 2개를 미리 따서 어머님 몫으로 간수하고 더 익도록 3개를 남겨두었다. 황 집사에게 또 전화 걸지는 않았다. 그 날은 토요일이라 파머스 마켓에서 사온 채소를 씻느라 베이 윈도를 통해 밖을 내다보며 싱크대 앞에 서있었다. 햇빛에 뒤뜰 정원수들이 푸르게 반짝이며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참으로 기분 좋은 쾌청의 주말 오전이었다. 담벽 위에 다람쥐 한 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내 시선에 잡힌 다람쥐 한 마리, 타잔처럼 휙 사과나무에 건너와 사과를 따 입에 물고 담벼락 위로 되돌아가 꽁지를 치켜세우고 사과를 돌려가면서 야금야금 먹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범죄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가슴이 쿵쿵 뛰었다. 기발한 생각이 그 범죄현장을 급히 카메라에 잡아두게 했다. 이 근처에 큰 공원도 있고 생태계 보존 늪지(Marsh)가 있어 오리, 오파섬, 다람쥐 라쿤등이 서식하는 터라 가끔 불시착한 부부오리를 열어놓은 차고 안에서 목격 해 야생군단이 낯설지 않는 터였다. 가슴이 쿵쿵, 그럼 그렇지, 황 집사에게 두 번째 전화 걸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증거를 확보해 두어 마음이 놓였다. 드디어 황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과 훔쳐 먹은 범인을 잡았어요. 다람쥐였어요. 죄송해요". 공연히 생사람을 의심하고 범인 취급을 했으니 편견에 젖은 환자나 다름없는 나였다. 조급한 결론에 조급한 행동을 한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부끄러워 목소리까지 기가 죽어 가늘어졌다. 다람쥐가 트레이닝 학교에 나가 타잔의 그네타기를 배웠을 리는 없을 터인데 나무에서 담벼락으로 건너뛰는 동작이 엄청 빨랐다. 속도 세상에 맞는 귀여운 범인이었다. 열매를 보면 나무의 정체가 파악되듯이 어떤 사람을 만나보면 어떤 나무가 그 안에 있는지 알게 된다. 열매는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된다. 가지에 매달려 있기만 하면 된다. 어떤 나무인지는 열매의 속성 그 자체가 밝히고 있기 때문에 사과는 굳이 사과 아닌 채 하지 않는다. 사과나무는 사과, 토마토는 토마토, 양파는 양파만을 맺는 자연법칙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흙이 사과 씨를 품으면 사과나무를 움트게 하고 사과 꽃을 피워 사과열매를 내놓는다. 이때에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란 토양에 좋은 말의 씨를 심으면 좋은 언어 말고는 다른 열매는 맺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말씀의 씨가 인간 마음토양에 발아될 때 씨와 토양은 상생(相生)으로 직결 되는 생명관계라는 깨달음은 사과나무가 나에게 가르친 과외공부였다. 내년부터 우리 집 사과나무는 다람쥐 부양가족까지 늘어나 뿌리는 깊이, 가지는 곧게, 이파리는 넓게 수액을 빨아올리느라 바빠질게 뻔하다. 인간 사회가 배워야 할 얼마나 아름다운 윈윈의 생명질서인가.


고향의 노래 (김재호 詩, 최현수 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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