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아름답다(중앙일보)

2007.03.10 11:50

김영교 조회 수:707 추천:182

사람들은 때밀이 그녀를 백언니라 부른다. 나도 그렇게 부른다. 경상도 억양에 인간미 물씬 풍기는 그녀는 금년 3월 생일을 맞아 22년의 때밀이 직업을 내려놓는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쉽지 않은 결단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를 다시 처다 보았다. 84년 이민을 오자마자 음식하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8백불짜리 식당 보조요리사의 일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그 다음 해 85년부터 3천불짜리 때밀이 직장으로 옮겨 22년을 하루같이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22년이란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날아가 늙음이란 나무에 꽂히는 화살이었다. 어제 공항에 도착한 것 같은 기분인데 하늘 한번 처다 보면 봄, 그 다음 처다 보면 가을이었다. 뒤돌아보면 힘은 들었지만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고백하는 솔직성이 천진스럽게 까지 보였다. 9순의 노모와 이혼녀 딸, 그리고 스스로는 과부, 3대 싱글 맘 조직을 이끌고 이민의 삶을 개척 한 여장부가장,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정면 대결한 용기, 바로 이민 1세의 장한 모습인 것이다. 허리를 다쳐 운신을 못할 때 한 친구는 나를 백언니에게 데리고 가 주었다. 그녀의 손은 약손인지 마사지 지압을 어찌나 부드럽게 잘하는지 잠이 들 정도였고 허리가 많이 호전 되었던걸 기억한다. 그 후 화분을 들다가 삐꺽한 허리 때문에 어느 듯 그녀의 단골이 되어있었다. 백언니는 같은 고향사람을 만나 반갑다며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정다운 <갱상도> 사투리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할 때면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직접 듣는 듯 향수에 젖어들기도 했다. 이런 저런 입담 좋은 이야기는 물바가지 끼얹을 때도 계속 이어져 그녀의 앞가슴만큼 풍만한 '이바구 창고'는 늘 들어도 새것처럼 재미있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쭉 뻗고 누워 귀만 열어놓으면 귀 불리, 배 불리 기분까지 이완의 포대기에서 느슨해져 푹 쉬도록 도와주곤 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저항 없이 백언니에게 알몸을 맡긴다. 친엄마와 딸처럼 그녀는 나의 유두 크기와 음모의 분포 내력을 달 알고 있다. 저리기 일쑤인 내 몸의 왼쪽 부분을 부드럽게 주물러 줄 때면 나의 긴장은 그녀의 손끝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스르르 녹아 사라져버린다. 물에 쪼글쪼글 불을 대로 불은 백언니의 손, 바람소리를 내면서 민첩하게 앞뒤, 아래 위를 오르내리며 나의 때 껍질을 골고루 벗겨 줄때 내 젖은 얼굴에 뚝뚝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처음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인줄 알았다. 그녀의 땀방울, 그것은 그녀의 열정적인 몰두였다. 온 힘을 쏟는 그녀의 노동은 100% 순도의 최선을 다함이었다. 이 때 마음속의 속때도 내 놓고 씻겨 지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나는 아프다는 구실로 편하게 누워 그녀의 서비스를 받는데 동향에다 동갑인 그녀는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일에 전념하는 성실한 그녀의 태도가 내 가슴을 감동으로 아리게 만들었다. 22년 그 긴 세월의 고객 중에는 백인, 흑인, 일본인도 꽤 많고 한국 사람이 압도적이며 팁 인심도 한국 사람들이 퍽 후한 편이라고 한다. 남의 땅에서 남의 나라 말로 낯선 거구의 사람들을 상대로 대개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스트레스 받기 일수 이고 열 받아 속상하고 답답해 뭉치고 응어리 저 쑤시고 저린 마디마디가 어디 한두 군 데 뿐이겠는가? 이런 손님들이 만족해하는 서비스를 해 주고 싱싱하게 재충전된 리듬으로 회복되어 문을 나서는 고객을 바라볼 때면 자신도 덩달아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고 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여행 중에 있던 유명한 어떤 목사가 눈앞에서 숨을 거둔 일이라며 심장마비를 일으켜 안색이 자주색으로 변하면서 숨이 끊어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사건, 놀랍고 애석한 일이었다고 술회하면서 그 후 숨이 훅 빠지는 것, 죽음이란 것이 삶 그 다음에 오는 자연스런 순서라며 죽음에 대해 초연해졌고 이승의 삶 너머 구원의 확신과 가치와 소망을 주는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윤병렬박사 불우소년소녀 가장 돕는 운동에 지속적인 후원자가 된 것도 그런 동기에서였다고 했다. 가장 속상한 일은 사우나에서는 아는 척해도 바깥세상에서 만나면 인사도 아는 척도 안하는 차별의식이라 정직하게 지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맛에 익숙해진 단골들은 시간을 줄이지 왜 그만 두느냐며 이제사 아쉬워한다. 생애에 한번 굳게 내린 결단이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 않는가. 전문지식이나 고학력을 요구하는 생활현장은 아니지만 관계와 고객을 잘 관리할 줄 아는 백언니야 말로 성공 때밀이 선두주자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밀스런 남의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깨끗이 청소하는 백언니, 없수이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의 생을 열심히 살아온 생활인, 곧잘 원망하고 좌절 잘 하는 우리 이민사회에 좋은 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만나는 각각 다른 사람에게 매번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하는 그녀의 프로다움은 학위나 라이센스를 필수로 요구하지 않지만 그녀가 풍기는 '자연스러움'이나 또 인간관계에 기본이 되는 그녀의 '사람냄새'야 말로 원칙과 정직에 직결된 프로다움이었다. 백언니처럼 삶의 어느 구석에 처해도 잘 적응하고 대처할 줄 알며 성실로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들은 결코 낙오되지 않을 것이다.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을 잘 관리하면서 <때>를 알고 퇴진하는 그녀에게서 역시 프로다운 멋쟁이 기질을 엿볼 수 있어 박수를 보낸다. 중앙일보 3월10일(토)2007-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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