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출

2007.06.23 08:39

김영교 조회 수:389 추천:89

시: 화려한 외출 김영교 '잡혔다' 환호성을 따라 섬뜩하도록 윤기 도는 푸른 비늘행렬 허공에 떴다 꽂히는 시선너머 6월의 하늘을 다 마셔버린 바다는 청안(淸安)을 토해내고 있었다 시리게 꿈틀대는 등줄기의 투명한 향수 속도의 물살을 가르며 줄의 탄력을 뛰어넘지 못하는 지느러미 떼 지어 움직이는 흐름 버리고 비상하는 찰라 사경(死境)의 몸부림은 차라리 치솟는 파도 순간의 선택이 허다하게 생과 사의 갈림 길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스반아 고등어와는 달리 돌아서는 의지는 덤의 선물이었다 5개월 투병한 여린 목숨과 준비되지 않은 작별은 자유롭지 못했다 금요일* 바다는 검푸르고 잔잔했다 흰 장미 이파리에, 그것도 수 백 장의 장미 꽃잎에 고이 눕혀 넓은 바다 품으로 날려 보낸 찬란한 마지막 사건 지상과 하늘을 오가는 시간 앞에 그 새 목련은 지고 진 목련은 자취도 없이 그리고 목련처럼 풀썩 저버린 한 생애 가슴이 저미어졌다 눈을 떠, 크게 떠 주위를 둘러보는데 흰 꽃잎이 보고 싶어 가슴의 소리가 있어 견딜 수가 없었다 싼타모니카 바다에 수장된 한 생을 리돈도 비치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슬 가득, 눈물 가득 게살을 삼키며 슬픔을 삼켰다 갈 길이 달라 마음에 빗장을 걸었다 가슴을 싸아 바람이 지나가며 소리를 낸다. 아프다 견디기 힘든 시간이 우리 앞에 무수히 다가 올 거라는 예감... 무서운 낯설음과 놀람에 떨고 있는 이 순간 흔들림 없는 <사랑>이 왜 문득 떠오를까? 한도 끝도 없이 싸는 큰 보자기 싸고 싸고, 덮어 싸고, 꼭 싸고, 또 싸고, 숨통 터질까 느슨하게 싸는 인내와 외로움과 아픔의 신축성 겹보자기 슬픔이 지나가면서 식욕을 돌려주었다 이어지는 지속적인 동행 손 잡아줌에 굽혀지는 무릎 눈물이 적신다 탁탁 게살을 까는 게 아니라, 망치는 나를 까고 있었던 것이다 눈 뜨면 피부에 와 닿는 그 남편의 익숙지 않은 외로움 그 무게가 힘들어 와인 잔을 가까이 하는데 스반아 고등어의 퍼드덕거림을 고스란히 담으려는 디카는 나를 해변에 세웠다 햇빛이 어루만진다, 해풍도 따라와 거든다 “무척 쓸쓸하시지요? 식사나 제대로 하세요? 힘드시면 바다에 한번 가 보지 않으실래요? 스바나 고등어의 화려한 외출을 보러요...” 스바나 고등어의 외출은 주소변경이었다. 친구*의 영혼이 주소를 바꾸었듯이. *(2007년 5월 25일 친구 심금옥 집사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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