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 더불어 사는 나무 / 김영교
2008.04.29 04:51
더불어 사는 나무 / 김영교
산행을 하다 숲에 들어가면 문득 사람이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햇빛을 나누느라 나무는 곧게 자란다
나무끼리 이웃이 되어 산 크기로 높아지면
하늘과 친하고
낮아지면 마을과 친하고
어두워지면 산새와 들새의 집이 된다
사람 숲에서는 사람이 심겨 질 자리를 스스로 선택하는 점과
덕목일수록 그 그늘이 강화도 까지 뻗지만
몇 번의 봄이 와도 한번 죽으면 다시 잎이 돋지 않는 게 다르다
나무사이에 서면 나는 부끄럽다
혼자 햇볕도 독차지 하려했고
잎만 내세워 남의 눈에 뜨이기를 좋아했다
흔들리어 주면 되는 걸 바람에 꺾일까 빳빳하게 걱정 많은 나무였다
숲에 들어가 보면
나무, 그 사이 길, 그 길 옆 낮은 들꽃 그리고 어우러진 바위, 물소리 새소리
이제 작은 내가 보인다
남의 눈에 안 보이는 잎의 배면
광합성의 기공을 엽맥 끝에 매달고
믿음의 가지에 실하게 붙어
동쪽도 북쪽도 빈 공간이 있으면
그리로 뻗기를 자원하는 나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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