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를 쓰는가/김영교
2008.11.01 14:40
시는 나에게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는 창(窓)이다. 삶의 숱한 만남으로 인도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또한 시는 숨쉬는 우주의 생명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기에 나는 시를 쓰고 시와 더불어 산다.
시가 존재하는 세상은 살만하다. 그 살만한 세상을 열심히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픈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며, 보다 더 순수한 마음으로 시를 쓰고자 하는 것이 나의 염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수함의 기준을 나에게 두지 않고 절대자에게 두려고 항상 노력한다.
이렇게 순수함을 지키면서도 사랑 받는 시를 쓰기 위해 나는 또 다른 의미의 산고(産苦)를 경험했고, 소리 없이 울부짖었으며, 그리고 미아(迷兒)처럼 고독했음을 고백한다. 나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존재함으로서 감수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외로운 몸부림이었다. 인생의 진실에 보다 더 가깝게 접근하기 위한 간절한 기도이기도 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함축(含蓄)되고 정선(精選)된 언어로 표현된 시인의 주관적인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에게 시는 책장(冊張) 위에 배열된 난해한 단어들의 침묵이 아니라, 책갈피를 헤집고 나와 사람들과 더불어 울고 웃는 생명의 소리이다. 또한 시는 나에게 처녀림과 같은 미지의 자연이며, 병들고 허약해진 영혼을 치유하는 자애로운 신의 손길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재와 그가 삶을 영위하는 세상과의 필연적인 관계, 생의 주관적 의미, 만남과 헤어짐으로 반복되는 삶의 리듬과 그 리듬 속에 스며있는 생의 법칙 등을 사랑이라는 프리즘으로 투영하려던 나의 시도가 어떻게 전달되고 평가될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생동하는 피조물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게 되었고, 신의 섭리에 대한 외경(畏敬)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아들, 폴과 쟌을 위한 조그마한 모성으로 힘들게 빚어낸 영시집을 애써 선보이는 마음은 떨리고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지치고 외로운 한 시인의 작은 결실을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음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용기가 되고 있다. 시성(詩性)을 허락하신 창조주의 은혜를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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