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사랑으로 꾸자/장영희
2009.06.15 10:56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저희 동네 어떤 영어학원 문 앞에는 '꿈도 영어로 꾸자!' 라는 푯말이 붙어있습니다. 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어떤 비장함까 지도 느껴지는 그 글귀를 볼 때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든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을 연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벌써 몇 달을 기 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니 동네엄마들 사이에 인기도 대단한 모양입니다. 언젠가 그 학원 앞을 지나는데 예닐곱 살 먹은 아이 둘이 길다란 막대를 들고 땅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또 다른 아이를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무슨 징그 러운 물건을 건드리듯,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간혹 서로 마주보고 웃어가며 두 아이가 팔을 길게 뻗쳐 막대로 치고 있는 아이는 가만히 보니 옆집 용민이었습니다. 심한 뇌성마비로 말하거나 걷는 것을 힘들어하는 용민이는 마치 그런 일에 익숙해 있는 듯, 아이들이 막대로 건드릴 때마다 가끔씩 올려다 볼 뿐, 그저 자기놀이에 열 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학원 선생님인 듯한 젊은 여자가 나오더니 용민이에게 "얘, 너 다른 데 가서 놀아라" 하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학원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데리고 들어가면서 여자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열심히 영어로 얘기했습니다. 영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매우 비 외교적이고 시대 착오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가끔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대해 무언가 오 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세계화 시대에는 무조건 유창하 게 영어만 잘하면 만사해결이고, 그러니 어렸을 때부터 다른 무엇보다 우선 영어 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어는 단지 많은 의사 소통 방법 중의 하나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영어를 잘 한다 해도 마음이 없고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버트란트 러셀은 어린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인내심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길다란 막대로 다른 아이를 건드리는 아이에게서 막대를 빼앗고 함께 손을 잡게 해주는 것이 영어단어 한 두개 더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세상은 서로 다르게 생기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두 함 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 하느님은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인간들이 각기 다른 말을 하게 하셨지만 대신 사랑하는 마음, 지구 어디에서나 통하는 만국 공통어인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 들의 가슴마다 '꿈도 영어로 꾸자'가 아니라 '꿈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꾸자'라는 마음의 푯말을 미리 달아 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장영희 마리아 / 전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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