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병원 우울 전염병
2011.09.13 16:46
묘비들 사이로
아이가 달려온다
기억의 저편으로 아득히 건너간 생애들이
몇 줄 글자로 남아
무릎 키 세우고 있는 사이
네 살배기 아이가 무어라 소리치며
저쪽에서 뛰어 온다
Beloved Wife and Mother 1939-1980
이국 땅에서의 크고 작은 기쁨
설레임과 회한의 날들
꿈결같이 아득히 사라지고
조국 하늘 아래 한 여인의 평생은
한 줄 이국 글자 묘비명으로 남았는데
한 명의 딸과 의학박사란 칭호만이
한 남자의 사십 년 생애가 남긴 모든 것이어서
의·학·박·사
이름 위에 새겨놓은 네 글자
살아남은 자의 애달픈 마음
그 옆의 묘비는 전하는데
내가 지상에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풍경처럼
줄지어 선 비석들 넘어
딸아이가 온다
팔랑팔랑
꿈속 나비 같다
―김기중, [공원 묘지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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