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 김영교

2012.10.14 15:12

김영교 조회 수:152 추천:12

신호등 / 김영교



신호등은 아버지 얼굴이다
밤낮으로
그 높은 데서 내려다 보신다

파아란 미소의 환한 얼굴은
옳은 일을 한 내게
내리시는 관대한 칭찬이시다

때론
못마땅해 근엄한 경고의 노오란 표정은
넘어질라 조심하라는 염려의 안색이시다

칭찬만 염려만 하시던 아버지가
빨갛게 노여우실 때는
분명
나는 그 뜻을 거스리고 있어
일딴 멈추고 나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밤이 내리는 네거리에 서서
신호등 손짓에 움직이는 나

이제
내 삶의 교차로엔 신호등이 없다
아버지의 사랑이 신호등 되어
오늘도
파아란 노정으로 삶 하나 직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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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 / 김영교



매일 밟혀
온통 짓눌려 주름진 마음
뜨거운 눈물로 달구어진
나의 다리미
오늘도 말없이 펴고 있습니다

매달려 있는 어깨 긴장
소매 끝의 피로
매일 다려도
땟국 줄줄 상채기들
구김살로 그냥 남아있습니다

새벽마다
낮게 엎드릴 때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주름 뒤에 숨어 불거져 나온 탐욕의 실밥들
골 깊게 헝클어진 내 모습만 보여

온 몸으로 누르고 밀어
쫙 피면서
뜨거운 기도 다리미로 땀 흘리며 대립니다

내 팔의 힘
내 몸 무게로 다림질을 해온 어리석음
옮아온 당신의 전류 스위치에 쉽게 펴지는 걱정의 구김살

오늘 교통 혼잡에 눌린 습한 윗도리
마켓 주차장에서 멍든 바짓가랑이
마음속 속눈섭이 뒤집어 쓴 먼지
이렇듯 쉽게 털고 빨아 다리며 깃 세워
반듯하게 옷걸이에 걸어놓습니다

환하게 외출이 입어줄 때
세상 골목마다 풀 먹인듯 아삭대는 기쁨
내딛는 발길마다
푸른 하루가 아름답게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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