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프슨'夫人 이야기
2007.05.12 08:58
'심프슨'夫人 이야기 - <'여름용'日記(111) >
5월12일 (토): 흐림.
----------------------------
'이규태 코너'(5)의 < 웃음의 韓國學 > 중에서 -
* < 심프슨 夫人(Mrs.Wallis Warfield Simpson-1896~1986) >
얘기를 옮겨본다.( 왜냐면 眞聖女王 얘기도 나오므로)
연인을 위해 왕위를 버린 임금님은 역사상 두 사람밖에
없다. 동양에 한 사람, 서양에 한 사람이다.
심프슨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 화려했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왕위를 버린 윈저 공(公)은 잘 알려져 있지만, 동양에서 사랑 때
문에 왕위를 버린 역사적 연인은 알려져 있지가 않다.
더우기 그 연인은 한국의 임금님이요,더군다나 남왕(男王)도 아
닌 여왕(女王)인데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은 그의 유모(乳母)의 남펀인
위홍(魏弘)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 여왕은 남편을 둘 수 없다는
비인간적(非人間的)인 국법에 용기있는 인간적 저항을 감행한
것이다.
이 금단된 비련(悲戀)은 2년 만에 끝난다. 위홍이 죽었기 때문
이다. 여왕은 슬퍼한 나머지 지금 해인사(海印寺)에다가 이 연인
의 원당(願堂)을 지어 혼백을 그 곳에 살게 했다.
그리고 상심(傷心)으로 왕관에 전혀 애착을 갖지 않고 있다
가 헌강왕(憲康王)의 서자(庶子)에게 왕위를 물리고는 죽은 연인
의 원당에 가서 여생을 살다가 죽은 것이다.
성종(成宗)21년에 해인사(海印寺)를 중창할 때 여러 가지 옛
문권(文卷)이 나왔는데,그것을 토대로 하여 쓴 매계(梅溪) 조위
(曺偉)의 중창기를 보면 -
"진성여왕이 위홍을 위하여 해인사를 원당으로 삼고 마침내
는 왕위를 버리고 해인사에 가서 지내다가 죽으니 죽어서도 함께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새삼 왕위를 능가한 큰 사랑을 되뇌는 뜻은 바로 서양에서 유
일하게 그 큰 사랑을 누렸던 심프슨 부인이 엊그제 별세했기 때문이다.
황태자시절의 에드워드 8세가 처음 심프슨 부처를 만난 것은
1930년 어느 한 귀족집 파티에서였다. 여우 사냥에서 갓돌아온
황태자가 감기가 들었다는 푸른 드레스의 심프슨 부인에게
"미국의 센트럴 히팅이 그립겠군요"
하자 ,심프슨 부인은
"황태자 전하로부터는 그런 상투적인 말보다 독창적인 그 무
엇을 듣고 싶었는데...." 한 것이 첫 대화요, 그 말에서
세기적인 사랑의 씨앗이 뿌려졌다 한다.
이 황태자가 에드워드 8세로 즉위하고 심프슨 부인은 남편과
이혼을 했다. 영국 헌법에 국왕이 이혼경력이 있는 평민(平民)
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청교도 정신과 영국적 보수주의, 그리고 미국의 경시
사상 속에서 황태후를 비롯한 왕실과 귀족, 그리고 볼드윈 수상
을 비롯한 내각,의회 모두 반기를 들었다.
오로지 이 국왕의 결혼을 두고 대세와 고고히 대결하여 싸운
분은 윈스턴 쳐칠 한 사람뿐이었다.
즉위한 해 12월에 왕관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윈저 공이 된
그는 심프슨 부인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그때 신랑과 신부의
나이는 42세와 40세였다.
이날 심프슴 부인이 입었던 드레스.모자.장갑.신발은 푸른색
일색이었고, 그녀가 가져온 80벌의 옷도 디자인만 다를 뿐 역시
푸른색의 동계열(同系列)색이었다.
이것은 당시 '심프슨 불루'라 하여 이 왕관을 버린 사랑에 공
감하는 사람들의 유행색(流行色)이 되기도 했다.
1972년 윈저 공이 죽었을 때 심프슨 부인은 검은 상복(喪服)
위에 심프슨 불루의 숄을 걸쳐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글썽이
게 했었다. 89세의 부인이 임종(臨終)에서 심프슨 불루의 옷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했다하니 그의 일생은 불루로 일관된 한 편의
시(詩)였다 할 수 있다. (1986.4.26)
* (참고): '심프슨'부인은 -
-------------------------------
- 영국 윈저공(公)의 부인.
- 성은 Warfield 이고, 공식 명칭은 윈저공 부인(Duchess of Windsor)
- 美國 出生
- 첫번째 남편인 海軍將校 스펜서와
10년 결혼생활 후 이혼(1926)
- 1927년 London 에서 英國人 E. 심프슨과 재혼.
- London 사교계에서 인기집중.
- 1930년 영국 황태자를 만났고
1938년 황태자 에드워드 8세로 王位를 계승하였으나
볼드윈 首相등이 그들의 결혼을 강력 반대하여 退位.
- 그 後 윈저 公이 되어
1939년 France 에서 결혼식.
- 윈저 公은 1972년 5月에,
심프슨 夫人은 1986년 4月에 Paris 에서 죽음.
5월12일 (토):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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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5)의 < 웃음의 韓國學 > 중에서 -
* < 심프슨 夫人(Mrs.Wallis Warfield Simpson-1896~1986) >
얘기를 옮겨본다.( 왜냐면 眞聖女王 얘기도 나오므로)
연인을 위해 왕위를 버린 임금님은 역사상 두 사람밖에
없다. 동양에 한 사람, 서양에 한 사람이다.
심프슨 부인과의 사랑으로 그 화려했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왕위를 버린 윈저 공(公)은 잘 알려져 있지만, 동양에서 사랑 때
문에 왕위를 버린 역사적 연인은 알려져 있지가 않다.
더우기 그 연인은 한국의 임금님이요,더군다나 남왕(男王)도 아
닌 여왕(女王)인데도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은 그의 유모(乳母)의 남펀인
위홍(魏弘)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 여왕은 남편을 둘 수 없다는
비인간적(非人間的)인 국법에 용기있는 인간적 저항을 감행한
것이다.
이 금단된 비련(悲戀)은 2년 만에 끝난다. 위홍이 죽었기 때문
이다. 여왕은 슬퍼한 나머지 지금 해인사(海印寺)에다가 이 연인
의 원당(願堂)을 지어 혼백을 그 곳에 살게 했다.
그리고 상심(傷心)으로 왕관에 전혀 애착을 갖지 않고 있다
가 헌강왕(憲康王)의 서자(庶子)에게 왕위를 물리고는 죽은 연인
의 원당에 가서 여생을 살다가 죽은 것이다.
성종(成宗)21년에 해인사(海印寺)를 중창할 때 여러 가지 옛
문권(文卷)이 나왔는데,그것을 토대로 하여 쓴 매계(梅溪) 조위
(曺偉)의 중창기를 보면 -
"진성여왕이 위홍을 위하여 해인사를 원당으로 삼고 마침내
는 왕위를 버리고 해인사에 가서 지내다가 죽으니 죽어서도 함께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새삼 왕위를 능가한 큰 사랑을 되뇌는 뜻은 바로 서양에서 유
일하게 그 큰 사랑을 누렸던 심프슨 부인이 엊그제 별세했기 때문이다.
황태자시절의 에드워드 8세가 처음 심프슨 부처를 만난 것은
1930년 어느 한 귀족집 파티에서였다. 여우 사냥에서 갓돌아온
황태자가 감기가 들었다는 푸른 드레스의 심프슨 부인에게
"미국의 센트럴 히팅이 그립겠군요"
하자 ,심프슨 부인은
"황태자 전하로부터는 그런 상투적인 말보다 독창적인 그 무
엇을 듣고 싶었는데...." 한 것이 첫 대화요, 그 말에서
세기적인 사랑의 씨앗이 뿌려졌다 한다.
이 황태자가 에드워드 8세로 즉위하고 심프슨 부인은 남편과
이혼을 했다. 영국 헌법에 국왕이 이혼경력이 있는 평민(平民)
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청교도 정신과 영국적 보수주의, 그리고 미국의 경시
사상 속에서 황태후를 비롯한 왕실과 귀족, 그리고 볼드윈 수상
을 비롯한 내각,의회 모두 반기를 들었다.
오로지 이 국왕의 결혼을 두고 대세와 고고히 대결하여 싸운
분은 윈스턴 쳐칠 한 사람뿐이었다.
즉위한 해 12월에 왕관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윈저 공이 된
그는 심프슨 부인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그때 신랑과 신부의
나이는 42세와 40세였다.
이날 심프슴 부인이 입었던 드레스.모자.장갑.신발은 푸른색
일색이었고, 그녀가 가져온 80벌의 옷도 디자인만 다를 뿐 역시
푸른색의 동계열(同系列)색이었다.
이것은 당시 '심프슨 불루'라 하여 이 왕관을 버린 사랑에 공
감하는 사람들의 유행색(流行色)이 되기도 했다.
1972년 윈저 공이 죽었을 때 심프슨 부인은 검은 상복(喪服)
위에 심프슨 불루의 숄을 걸쳐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글썽이
게 했었다. 89세의 부인이 임종(臨終)에서 심프슨 불루의 옷으로
갈아입혀 달라고 했다하니 그의 일생은 불루로 일관된 한 편의
시(詩)였다 할 수 있다. (1986.4.26)
* (참고): '심프슨'부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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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윈저공(公)의 부인.
- 성은 Warfield 이고, 공식 명칭은 윈저공 부인(Duchess of Windsor)
- 美國 出生
- 첫번째 남편인 海軍將校 스펜서와
10년 결혼생활 후 이혼(1926)
- 1927년 London 에서 英國人 E. 심프슨과 재혼.
- London 사교계에서 인기집중.
- 1930년 영국 황태자를 만났고
1938년 황태자 에드워드 8세로 王位를 계승하였으나
볼드윈 首相등이 그들의 결혼을 강력 반대하여 退位.
- 그 後 윈저 公이 되어
1939년 France 에서 결혼식.
- 윈저 公은 1972년 5月에,
심프슨 夫人은 1986년 4月에 Paris 에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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