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제(失題) / 종파 이기윤

2005.03.19 19:16

이기윤 조회 수:52 추천:1



  

    실 제(失題) / 종파 이기윤


    어느 한 지표에
    젖은 안개 미명 속에서
    날카로운 꿈이 터지던 날
    횃불이 하늘을 태우고
    포성이 지구를 뒤흔들어 놓았다.

    찢기어진 지각
    여기 폐허
    끄슬린 벽돌벽 밑에
    형제의 피로 난
    담쟁이가 커나고
    텅빈 장독이
    경사진 노을을 향해 앉았다.

    선열은 피로 쓴 시집을 외이며
    이곳을 향해 발버둥 쳐도
    뜨거운 불길 지난 잿덤이 위에
    벌레를 먹으려는
    벌레들
    하늘은
    이미 뚫어졌는데........

    흰꽃 핀 언덕고개
    뻐꾹새 울음이
    텅빈 항아리에
    메아리를 그리는가.

    해오라비의
    꿈만
    아득히 노을에 졸고 있다.



    * 6.25의 후유증이 심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신문의 빡스에 실렸던 옛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