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가 사는 집

2002.11.13 04:42

길버트 한 조회 수:1452 추천:87

비오지 않는 사막을 걸어간다
태양은 내려와 하얀 사막을 태운다
허리춤에 나침반은 졸고있다
이곳에 그냥 서 있을 수는 없다

젊음이 아니라도 떠난다
낙타가 모여 사는 사막으로
사랑하는 나의 껍질은 놔두고
가족에게 떨어져 나와 홀로,
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가자
분명 그 어디에는 꿈꾸던 곳이
날 기다리고 있을 거다. 가자
뒤돌아 돌아올 것을 기억하자

낙타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배고픈 하루는 빵 조각을 보여준다
기쁨의 아니라 지친 땀방울이다
수십 번도 넘게 되물어 밤이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다
신문의 굵은 활자의 줄거리보다
구인광고의 작은 몇 줄
어지럽게 미로를 쫓아다닌다
내가 선택한 사막의 저 끝
한순간 가시선인장의 즙이
떨지 않고 달게 느낄 때
초침처럼 생각 없이 걸어간다

낙타의 그을린 살갗의 통증
무서운 추위는 낮보다 밤
더 무서운 건 혼자라는 거
치아가 악기처럼 스스로 떨고 있다

혼합된 풍경은 나를 던져 색칠한다
처음의 색깔과 느낌을 간직한 체
지나가는 발자국을 따라 가는 나
이곳은 이곳만의 묵시(默示)가 있다
많은 걸 눈으로 말하고 대답한다
알지 못하면 마른 풀뿌리도 없다
그렇게 시도 잠들고 예술도 잠들고
깨어있길 바라는 나도 잠든다

환상의 모래를 마실 수는 없다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가 살던 집
사막 어둠 속은 그 집 같다
잠은 죽음의 바다라고 했다

거울 앞에 선 나, 나
얻은 것 보다 잃은 게 많은 얼굴
자화상을 그리기엔 초라하다
나아닌 어설픈 또 다른 나는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이곳에서 여유는 객기일지 모른다
사막의 달(月)로 그리던 애증의 그림자
허우적거리는 한낮이 차라리 낫다

사막에도 비가 왔다
번개가 밤을 할퀴는 소리
낙타는 쌍봉(雙峰)으로 비를 받는다
다 벗기지 못한 거죽이 너덜거린다

비로 씻긴 사막에다
내 집을 짖고 싶다. 빈 껍질로
스쳐 지나가는 다른 많은 나
어림없다고 고개를 젖는다
이곳에도 돌이 있다. 모래알보다 큰
미치게 하는 태양을 가리자
워싱턴, 링컨, 해밀턴, 잭슨......
사막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적어두자

낙타는 어디에서도 죽지 않는다
아무도 낙타의 죽음을 보지 못했다
홀연히 사막으로 걸어가는 모습뿐
많은 낙타가 또 그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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