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의 부활

2003.09.29 07:46

길버트 한 조회 수:1148 추천:86

해마다 9월초가 되면 미국의 학교들이 개학을 한다. 9월의 첫째 월요일이 노동절 연휴이지만 평소에 학교 갈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이날은 꼼짝없이 연휴가 아니고 파김치가 되는 노역의 날이 되기 십상이다. 각 백화점이나 소매업소에는 학교 유니폼부터 시작해서 학용품들을 준비해야하는 학부모들로 평소에 넓던 백화점도 좁을 지경이다. 맞벌이하는 우리가족도 다른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연휴의 의미도 없이 달콤한 낮잠도 잘 수가 없다. 백화점에는 아이들 손에 이끌려 나온 많은 부모들이 '백 투 스쿨(Back To School)'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 부모들의 표정은 공감할 정도의 피곤함이 가득 찬 얼굴이다. 나는 문득 내 얼굴이 저럴까하는 마음이 들어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이런 준비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입던 옷을 빨아서 깨끗하게 입으면 되었고, 중 고등학교 때는 교복을 입었으니 옷이라는 것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아버지가 다 썼던 볼펜 속을 버리고 뚜껑을 손잡이로 길게 만들어 연필의 마지막까지 필통에 몽당연필들을 정리해서 두 세 개쯤 더 넣어 준비하면 되었고, 책도 동네 형들이 쓰던 책을 귀퉁이에 스카치 테이프를 부쳐 쓰며 자랐다. 연필과 마찬가지로 공책도 나무에서 축출해서 쓰기 때문에 아껴 써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공책도 정 중앙에 줄을 그어 반으로 나눠 썼는데 누구나 예외 없이 적용했기에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학교 생활을 했었다. 선생님은 연필과 노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참 자세하게도 알려주셨다. 우리 나라에는 자원이 풍부하지 못해 인도네시아에서 나무원료를 사다가 만들기 때문에 아껴 쓰는 것은 절약일 뿐만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정신이기도 하다는 말씀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덕분에 사소한 생활에서도 반영되어 유달리 재활용이나 새것을 사기보다 고쳐 쓰거나 아껴 쓰게 되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아들녀석에게 이야기하면 아마 혹성을 탈출한 머리카락하나 없는 조금 이상한 외계인쯤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그런 것을 말해주기 보다 평소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을 보여주면서 간접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미야, 지미야. 일어나야지. 학교 가야지."
"으음... ... ."
"그러게 어제 일찍 자라고 했는데 늦게까지 컴퓨터게임만 하니까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지."
"알.. 알았어요. 조금만 더... ... ."
"안되겠다. 선생님한테 이야기해서 동생 타미가 네 대신에 학교를 가게 해야겠다. 타미야!"
지미는 벌떡 일어나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세수를 하고 나와 엄마가 만들어 논 토스트를 먹고 가야 할 참인데 화장실에 들어 간 지미가 나오지를 않는다. 큰소리로 불러도 소용이 없어 화장실에 가보니 옷을 입은 채로 변기에 앉아 눈을 감고 졸고 있으면서 똥이 안나온다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하면 못쓴다고 눈흘김을 해준다. 수건을 목에 감고 샤워 장에 얼굴을 내밀어 세수를 시켜주었다. 식탁에 앉아서도 어린 아기처럼 칭얼거리며 빵이 맛이 없다고도 하고, 입이 까칠하다고도 했다. 그리고 개학한지 열흘도 안되어 가방이 더럽다고 새 가방을 사 달라고 징징거렸다. 새 가방을 안 사주면 학교에 안 간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자식이 아니라 상전이 따로 없었다. 어렵게 비위를 맞춰서 학교를 보냈다.
회사에 출근해서 지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고 보면 사소한 거짓말도 자꾸 하면 안될 것 같아 학교 선생님에게 전화로 상의를 했다. 지미도 문제지만 다른 아이들도 혹시나 그럴까 싶어 일일교사로 자원해서 교육적인 동화를 들려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하고 날짜를 정했다. 노동절 연휴도 지난 지 얼마 안되어 회사에 월차를 이야기하는 것이 송구스러운 일이었지만 아프다는 핑계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부장님은 웃으면서 승낙을 해주셨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지미의 아빠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피노키오' 입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사는 '가페토'라는 늙은 목공이 있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늙은 목공은 쓰다 남은 나무토막으로 나무 인형을 만들었어요. 나무에다 예쁘게 색칠까지 하고 개구쟁이처럼 생긴 인형을 '피노키오'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나무인형에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답니다. 늙은 목공이 잠든 사이에 요정이 나타나 피노키오에게 심장을 넣어주고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 주었어요. 요정은 피노키오에게 한가지 지켜야 할 것을 말해주었어요. 만일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 코가 자꾸만 커진다는 것이었어요. 피노키오는 아무 생각하지 않고 걱정하지 말라며 대답하자 코가 길어졌어요. 요정에게 제발 다시 코를 작게 해달라고 했어요. 요정은 꼭 지켜야 한다고 하며 피노키오의 코를 처음처럼 만들고 사라졌어요. 신이 난 피노키오는 응접실을 껑충거리며 뛰어 다녔어요. 늙은 목공은 피노키오의 뛰어 다니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어요.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야?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날 수가 있지?"
"하하하. 이게 다 할아버지 덕분이에요. 할아버지가 저를 만들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나는 네가 옆에 있으니 기쁘구나."
그런데 피노키오는 집에서만 있기가 따분했어요. 밖에도 나가고 싶고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졌어요.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학교도 다니고 싶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졸라 밖으로 나가 돌아 다녔어요. 다람쥐와 개미도 만나고 사과도 먹고 즐겁게 지냈어요. 여러분들처럼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입학해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선 피노키오는 학교가 보이는 언덕 위에 오를 무렵 너구리와 여우가 나타나 학교보다 더 재미난 곳이 있다고 달콤한 말에 속아 숲 속 깊이 들어가 낮잠도 자고 뛰어 놀기만 했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할아버지에게 학교를 다녀왔다고 말하자 갑자기 코가 길어졌어요. 자꾸만 길어지는 코 때문에 고개도 돌릴 수 없었어요. 문득 요정이 한 말이 생각났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아이쿠, 내 코야. 할아버지, 잘못했어요, 사실은 친구들과 숲 속에서 놀고 왔어요. 다시는 그러지않을께요." 그러자 코가 다시 작아졌어요. 다음날 너구리와 여우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 피노키오에게 더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며 꼬여서 도시로 나갔어요.
마침 도시에는 서커스가 들어와 흥겨운 음악과 동물들이 재주를 피우고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피노키오는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뚱뚱하게 생긴 요술쟁이가 피노키오를 잡아 묶고 방에 가둬 버렸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지만 밖에서 너구리와 여우가 요술쟁이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학교도 안 다니고 말도 안 듣는 저 녀석을 당나귀로 만들어 내 물건들을 옮기게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피노키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뉘우치고 있었지만 꼼짝없이 방에 갇혀 있는 것이었어요. 요술쟁이가 뭐라고 하자 피노키오의 귀가 갑자기 커지고 엉덩이에서는 꼬리가 쑥쑥 자라 당나귀의 꼬리처럼 길어졌어요. 가페토 할아버지를 불러도 소용없었어요. 서커스는 끝이 났고 피노키오를 마차의 짐칸에 실려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되었어요. 얼마를 갔을까요. 바다가 보이는 비포장도로에서 마차가 돌부리에 비틀거리면서 물건들과 동물들이 가득 찬 마차가 중심을 잃고 굴러 떨어졌어요. 마차에서 빠져 나온 피노키오가 정신을 차리고 죽으라고 뛰어서 도망을 쳐서 집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피노키오를 찾으러 떠난다는 할아버지의 편지를 보고 피노키오는 할아버지를 찾으러 나섰어요. 바다를 건너다 큰고래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어두운 고래의 뱃속에 희미한 불빛이 보여 가보니 그 곳에는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피노키오도 기뻤지만 할아버지가 더 기뻐하며 행복해 하셨지요. 고래의 뱃속에서 불을 피워 뜨거운 고래는 입을 크게 열었을 때 헤엄을 쳐서 탈출했어요. 집에 돌아온 가페토 할아버지와 피노키오는 얼싸안고 기뻤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지고 기운이 없어 침대에 누워만 계셨어요.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돼서 쇠약해질 때로 쇠약해져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아무리 눈물을 흘리고 거짓말을 안하고 학교도 잘 다니려고 해도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아요. 만일 피노키오가 거짓말도 안하고 학교도 잘 다녔으면 할아버지는 더 오래 오래 사시고 피노키오도 지금처럼 슬프지 않고 더 행복하였겠지요?"
"네~"
"여러분은 피노키오가 아니라 착한 어린이들이라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려 줄 수 있게 되어 즐거웠어요."

박수소리가 교실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학교의 차임벨이 울렸습니다. 지미와 친구들이 나에게 달려와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웠다. 지미의 밝은 표정과 친구들에게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하루 종일 콧노래가 흘러나온 보람된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 온 지미는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아빠의 연설에 대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다.
"지미야, 오늘 아빠가 들려 준 이야기를 듣고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되었니?"
"일찍 일어나 학교에 잘 다니고 아빠 말씀도 잘 들어야겠다는 생각했어요. 친구들이 좋은 아빠를 뒀다고 부러워했거든요. 잠을 더 자려고 또 거짓말을 하면 저도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질지 모르잖아요. 학교가면 좋은 아빠를 두었다고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좋아요. 무엇보다 저는 아빠를 사랑하니까 아빠가 고래의 뱃속에 들어가면 안되잖아요. 하하하."
"우리 아들이 최고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우리 가족이란다. 가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것처럼 말야. 지미야, 가방을 엄마가 깨끗하게 빨아 줬는데도 그것이 아직도 맘에 안 드니?"
"아녀요, 새 가방이 필요했던 것이 아녀요. 친구가 새 배트맨 가방을 들고 와서 부러워서 그랬던 것뿐이에요. 새 가방을 가진 친구보다 저에게는 더 멋진 아빠가 있는데요."
"오늘 저녁은 엄마가 어떤 맛있는 음식을 해 놨는지 볼까?"
"네."
"타미야, 뭐하니? 내려와서 밥 먹자."

흐뭇해하는 지미를 위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소한 일도 신경을 써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미가 떼를 쓰면 나도 모르게 다음에 사준다든지 해서 약속을 어긴 일도 많았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나도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성적이 좋고 똑똑한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들은 나의 꿈이고 희망이었다. 저녁을 다 먹으면 지미의 필통을 꺼내 작아진 연필을 길게 만들어 줘야겠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지금의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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