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의 흔적

2005.04.30 04:09

한길수 조회 수:719 추천:83

              
강이 보이는 풀숲에 서서
어둠보다 먼저 일어나는 안개를 본다
    
초겨울 성난 노을도
안개의 발에 걸려 기우뚱거리고
마른 강아지풀에 걸려 흔들리기도 하고  
더러는 어두워진 하늘을 기억하기도 한다
해의 단단한 오기조차
안개에 드러눕는다
강바닥에 침몰한 일출을 끌어올리고
저마다 걸어왔던 자리로 떠난다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침
목젖에 걸린 네 이름이 선명하다  
널 닮은 그리움으로 방울진 안개가  
내가 걸어온 풀숲 길을 향해
수직선을 그리며 하나씩 떨어진다
안개는 안개를 끌어안아도 적어 보이듯
내 속에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밤사이 가슴앓이 흔적들이 사라지고
풀숲도 지쳐 말없이 강을 보고있다

안개에 젖지 않은 바람
아무도 모르게 수평선 너머로 떠밀며
오래지 않은 기억의 싱싱한 언어를 토하자
침몰하는 것은 언어만이 아니라는 듯
속도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낙하한다
안개 자신도 말들의 받침을 따라
강물에 뛰어들어 점점 가라앉는다

강이 보이는 풀숲에 서서
어둠보다 먼저 일어날 안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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