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2005.09.15 08:52

한길수 조회 수:721 추천:72



대한민국 마흔두 살의 이씨가

무거운 생의 옷을 벗어던지고

지하철 2호선 선로 위로 뛰어들었다

아들을 얻었다고

어머니 이마에서 솟구치던 기쁨의 땀방울

섬광처럼 빠르게 철길을 건너갔다

부정 타지 말라고 새끼줄에 붉은 고추를 달았겠지

누구에게 갚을 빚으로 마지막 희망을 저당잡힌 걸까

서툰 걸음으로 여기까지 걸어와서

오 년 노숙생활로 국숫발처럼 빚더미만 불어터지고

남대문 새벽시장의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유언 대신 더듬거리며

태어나려고 악착같이 잡았던 탯줄을 놓았다

탯줄 같은 세상의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명품 광고판 아래 거적도 깔지 않고 잠든 그의 꿈 자락

검붉은 선혈이 낭자하게 스며든다

쉬쉬 어깨 너머로 눈살을 찌푸리고 가는 발길들

던지고 가는 말의 화살들이 고막을 찌른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으려는

고치집 속에 갇힌 누에 같은 세월

종두소리를 내며 떠나가고 있다



내 나이 마흔셋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전철이 지연된 시간은 오직 십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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