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2006.01.05 09:43

한길수 조회 수:690 추천:95

       발끝에서 거슬러 쥐젖이 무성하게 핀
       목덜미 위로 한 사내의 눈망울에 터질 듯한 꽃
       고국에 있는 처자식의 뱃속 채우려
       귓전에 남는 호통조차 웃음으로 대신하고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프레스 앞에 선다
       방심하던 사이 손가락이 날자 꽃들이 핑하고 돈다
       시든 꽃은 산재 혜택보다 퇴사가 더 쓰라린 절망
       떨어진 육신을 만나려 소리 없이 객체들이 쌓인다
       떠나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끊어진 골수 줄기
       명동성당 바닥에 주저앉아 손들어 지혈시키고있다
       일할 곳이 없어 빚지고 떠나온 그들이기에
       노동비자 쟁취 붉은 띠 머리에 두르고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빈손으로 쫓기느니  
       선택의 여지없던 동료의 주검을 보며  
       등짐 하나 씩 더 올려놓고 일어서기 위해
       흐르던 눈물만큼 삶이 가벼워 졌을지
       어느 강에서 만날지 모를 푸른 눈에 고인 비
       못박아 두지 못한 천막 빈틈으로 스멀거니
       태어난 곳에 대한 값싼 그리움이 밀려든다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보고싶다던 아들 얼굴
       사치의 향수라며 거미의 실을 뽑는 작은 소리로  
       네팔 출신 노동자 A씨는 푸념으로 팔각 줄을 친다
       등재할 수 없는 이름 품고 다니는 그 이름은 A씨
       눈발이 덮는다고 덮어질 것 같으면 차라리 낫겠다
       오늘따라 선술 마셔도 쇠 긁는 소리만 들려오는데
       취기에 벌건 난로가 되레 춥다고 이글거리며 떨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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