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향기 찾아 떠나는 길 - 최석봉론

2006.04.01 02:54

한길수 조회 수:757 추천:72

      
그리운 향기 찾아 떠나는 길
- 최석봉론

                                 한길수


1.

중국 최초의 어록으로 유교의 근본문헌인 사서삼경은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으로 불린다. 중용(中庸) 제 1장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여 성(性)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으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갖추고 있는 것으로 규정했다. 사람은 각자의 품성에 가려져 천명인 본성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본성을 알고 실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50세를 지천명(之天命)이라고 했던 것도 천명을 알기 어렵다는 것을 가늠하게 한다. 선(善)과 인성(人性)을 함께 연계시켜 인성은 본래부터 선한 것이며,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의 네 가지 도덕으로 사람들이 선한 성을 타고나지만 덕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의 실마리를 찾아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당연히 이 네 가지의 선을 가져야 하는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인성을 상실하게 되어 금수만도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집약적으로 체계화한 맹자의 성선설은 인의예지의 본성이 사회적 윤리의 측면에서 구현된다고 보았다.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 군자삼락(君子三樂)은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고 고개 숙여 사람에 부끄러움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자신의 부모를 섬기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미학을 다룬 인애사상(仁愛思想)과 도덕적 삶의 감동을 주는 인간의 심상을 가지고 있는 시인을 알고 있다는 것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미주에 거주하는 최석봉 시인으로 작품 안에서 녹아나는 시 정신과 삶을 비교하고 삶과 철학, 경험을 바탕으로 주어진 길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생의 일화들을 허심탄회하게 엮어낸 시들이기 때문에 의미를 느끼며 시에 나타난 배경과 사상이 유교정신과 견주어 비유할만하다는 것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시인의 중요한 시어는 사람과 자연, 모국에 대한 향수 등이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경사상이 돋보였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상해하는 참담한 우리의 사회, 오래 전부터 사회 풍조가 물질만능주의에 길들여져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사회적 공존을 무시하고 일탈을 꿈꾸며 무엇이든 혼자만의 영달과 최고가 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 사극이 열풍처럼 퍼지고 있는 것도 하나의 연유라고 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역사 속에 묻혀 있는 것 같아도 역사는 다시 재현되고 있다. 미약하나마 예의 근본과 도덕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며 이 땅에 떨어진 인성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깨닫게 하는 순기능의 역할을 하고있다. 과거의 진리를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해주기 때문에 지난 것은 지난 것에 그치지 않고 올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 빈 소주병에 꽂아 논 진한 들국화 향기 같은 감성으로 그리운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자신이 걸어온 생을 돌아보고 보듬는 한 시인의 애절한 연시를 독자들과 함께 감상하고 시인의 깊은 뜻을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서두를 연다.

최석봉 시인은 목포에서 출생했으며 계간 <창조문학>에 시로 등단했다. 월간 <아동문학>에 동시로 당선해서 아동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와 한국창조문학가협회 회원, '비존재'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상재한 첫 시집, '원 원 세븐 오 에잇 베니스 블루버드'는 시인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담았던 리커 스토어의 주소가 원 원 세븐 오 에잇 베니스 블루버드로 나비가 고치를 벗어 훨훨 날개를 펴듯 그가 상상하고 꿈꾸던 생각과 이미지들이 아름다운 시어로, 가슴을 찌르는 감동의 시로 새로 태어나 담겨있고, 긴긴 이민생활에서 겁없이 내달아 살면서 11708 베니스 블루버드에서 산 23년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황금알을 낳아야 할 시기에 답답하리만큼 한정된 좁은 공간, 수맥도 없는 맨땅을 미련스럽게 깊숙이 파내려 갔던 시인은 거기서 잃었건 얻었건 별다른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실패와 성공은 결국 같은 선상에 있기 때문에 삶을 한 과정으로 생각했다. 명지대 홍문표 교수는 그의 과거 시간과 공간을 아름다운 상상의 뿌리로 하여 현재를 보다 풍요롭게 꽃피우려는 자기정체성의 탐색으로 보다 바람직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메타포의 시학을 통하여 너와 나, 인간과 자연의 단절을 극복하고 우주적 통일과 평화를 추구하며 이를 소박하고 따뜻한 사랑의 실천으로 현실화 하고자했다는 점이 첫 시집이 이룩한 귀중한 성과라는 것은 갈 길은 아득하게 멀고, 멀다는 것은 끝이 있다는 의미로 느린 걸음이라도 끝까지 가볼 생각이라는 시인의 얼굴을 그려본다. 시인이 담아 논 시들을 감상하면서 느낀 소감을 풀어본다.


2.

사람에게는 누구나 실현 가능한 소망과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불가능한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은 다소 엉뚱한 발상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나 행동을 했을 때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의심을 하던 옛 어른들의 우화 같은 과장된 표현을 넉넉한 마음의 문화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한 번만 이라도
해가
서쪽에서 솟아오르면 했습니다

한 번만 이라도
올림픽 거리가
폭설로 폭삭 주저앉은 것을 보았으면 했습니다

한 번만 이라도
하나님이 구름 타고 내려와
마음이 가난한 자들
토팽가 캐년까지만 이라도
태워다 주었으면 했습니다

꽁꽁 언 땅 말죽거리로 가신 어머니가
꼭 한 번만이라도
우리 가족 모인 자리에
잿불에 간갈치 구워 내 옆에 앉아
아침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것 변한 것 없고
해가 동쪽에서 솟았습니다.
                                  -<2003년 정월 초하루> 전문
                  
때묻지 않은 순박한 사고(思考)에서 시작하지만 불가능한 희망을 몽환처럼 가슴에 품는다. 일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기대한다. 로스앤젤레스의 온난한 아열대성 기후와 1년에 평균 20일정도 있는 비 오는 날 이외에는 늘 하늘이 맑고 청명하며 쾌적하기 때문에 눈은 내리지 않으며 이상기후로 간혹 우박 정도가 그것도 잠깐 내리는 것이 고작이다. 시인은 2연에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거리에 폭설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이상기온과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지 않는 한 통계적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가변 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기대는 세상이 멸망하거나 천재지변을 바라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온전했던 지난 시간의 전환, 추억의 재현을 바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림픽거리는 한인타운의 중심적 거리이며 서울공원에서는 해마다 장터가 열려 한인들의 문화 축제가 된 상징적인 곳이지만 폭설로 한국인들의 시선이 고향에 온 것 같은 서정을 느끼고 염원하며 한번이라도 고국의 겨울, 그 매섭고 춥던 대지에 서있는 것을 꿈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3연에 성서적 계시처럼 마음이 가난한 자들을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구절처럼 메시아를 통해 풍요로운 토팽가 캐년으로 인도해 주기를 기도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기 살기로 앞만 보고 살아가며 타민족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유태인 보다 더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일을 하며 뒷바라지를 하는데 이것은 부모로부터 받아온 내력일 것이다. 물질적 세계가 정신을 지배당하며 살아오는 사람들에게 넓은 대지와 바다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라고 한다. 이것은 시인이 부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몸소 겪으며 깨달은 산 증언이다. 4연은 해가 서쪽에서 뜰 수 있는 상상을 넘어 초월적인 기대감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활로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는 소망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담겨있다. 5연의 현실은 메마른 거리와 인간미 없는 퍼석한 삶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1연과 2연의 불가능한 조건이 3연의 조건 하나만이라도 가능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원한다. 시인에게서 어머니는 기쁨의 전부인 것처럼 슬픔도 크다는 것이다. 설령 폭설이 오고 삶의 여유를 가진다고 해도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한다면 더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생존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시인은 2002년 월드컵 대회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일궈낸 것은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가능성과 국민의 염원으로 선수들이 보려줬던 것처럼 불가능에 대한 가능성과 희망을 성취할 수 있게 해준 역사적인 한해를 보내면서 2003년 새해에도 이어지길 바라며 정월 초하루를 맞는 시인의 마음이 강렬하게 담겨져 있다.  

두 번째 시집 '하얀 강'에는 산과 바다, 하늘과 별, 나무들과 바람이 시인을 훈훈하게 감싸고 아내와 아이들, 가슴 따뜻한 친구들과 가슴속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시를 쓸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는 고백과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묶어 70 여 편이 수록되어있다. 그 중 가족 이야기가 담긴 시들도 있는데 어머니에 대한 시를 본다.

이머전시 배달 가는 길
로스안젤레스 스트릿 지나다가
허연 어머니 한 분
버스 기다리는 걸보고도 지나쳤다네

되돌아오는 길
혹시나 하고
그 어머니 계시던 곳 보았더니
지친 모습 그대로 서 계셨네

-중략-

노인 아파트에 내려드리고 오는 길엔
뿌연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했네
                                            -<혼자 사시는 어머니> 부분

심훈이 1919년 3월5일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경성감옥에서 6개월 간의 옥고를 치렀을 때 감옥 안에서 쓴 <어머니께>라는 편지가 생각난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또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어머니는 실존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가 있겠지만 조국은 조상의 숨결을 가지고 영원히 존재하고있다. '석양에 흔들거리는/긴 목 코스모스 억새풀꽃/산자락 초가가 슬프구나//그립던 조국이여/어머니여' -<조국> 일부분의 시를 보면 시인이 태어나 자란 곳이 모두 어머니의 품속이며 쓸쓸함조차 어머니를 닮은 고국으로 산천이 모두 한 점 혈육 같은 정을 느끼며 모국을 방문했다. 화자가 말하는 '허연 어머니'는 이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게 하는 생존의 인물로 여성성의 상징이다. 시인은 늙고 힘없는 노인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쁜 여건 속에서도 안부를 묻고, 태워주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후회하는 마음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아름다운 예절을 이어오는 우리의 전통적 관습이 담겨있다. 눈에 밟혀 되돌아오는 길에 지친 모습으로 서 계신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는 마음은 예(禮)의 본보기로 공경지심(恭敬之心)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에 사는 타 인종 사람들은 이해도 안될뿐더러 그런 생각도 미치지 못한다. 좋은 일을 하고도 처음에 외면했던 자신에게 꾸짖듯 미안해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안개비는 시인의 눈물만큼이나 뿌옇던 것은 한 분이셨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인은 미국에 온지 30년이 넘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럼 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뀐 셈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1986년에 개정이 되었고 로마자 표기법은 2000년에 개정되어 시행 당시 종전의 표기법에 의하여 발간된 교과서 등 출판물은 2002. 2. 28.까지 이 표기법을 따라야 한다. 한국 정부가 개정된 국어 사정을 현지 교포들에게 홍보하지 않은 원인도 있겠지만 해외에 있는 많은 교포들이 개정된 표기법을 알고 익숙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은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으로 적으며,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 또한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하게 되어 있다. '로스안젤레스 스트릿' 등 지명 외래어는 '로스앤젤레스 스트리트'로 하고 '이머전시 배달'은 '급한 배달'이나 '빠른 배달' 정도의 우리말로 사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

세 번째 시집 '풍경은 혼자 울지 않는다'는 두 번째 시집 이후 불과 일년 반만에 나왔으니 시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은 사실이다. 이 시집에는 76편의 시들을 보면 행복한 회상을 담백한 언어로 풀어낸 시와 자연의 서정을 담은 시, 산에 올라 바라 본 회고적인 기행 시와 고국을 방문하고 담아 논 시들이 실려있는데 여기서는 시인의 가장 중요한 시어중의 하나인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시로 풀어 내지 못한 감성적 모티브를 찾아 은은한 향기에 심취하려고 한다.

울 어머니는
눈물 흘리는 것,
그리고
배고파 부엌에서 서성이는 것 보시면
"못난 놈아 사내놈이 울긴 왜 울어"
"배고픈 것 참아 내야 큰사람 된다" 하시고
광에 들어가 혼자 흐느끼시던 어머니

__________
__________

계시면
부엌 냉장고 열어보시고
키우던 일 생각나
먼 산 보시면서 눈물 훔치실
울 어머니
                          -<울 어머니> 전문

군자삼락 중에 부모를 여읜 슬픔이 고희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애잔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비교적 짧은 글이지만 이 안에 수십 년 동안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엿볼 수 있으며 시인의 배경이 된 시점이 과거에서 현재로 파노라마처럼 한 폭 영상이 펼쳐진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아직도 생생한데 사람은 가고 시인의 가슴에 회한만 남아 있는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을 표현했다. 빈곤의 굴레가 어디 시인이나 가족만의 잘못이겠는가. 왕조가 몰락하고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통해 험난한 굴곡의 역사를 사무치게 느끼며 함께 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이 가져다 준 동족상잔의 비극이 두 줄의 선으로 남아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면 수십 권의 책으로도 부족하며 몇 날을 꼬박 세워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격한 감정의 물결이 제대로 이을 수 없다.
은유적 사유 대신 웅변술에 관한 이론으로서 산문적 표현의 수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도 미적 표현을 위하여 문장과 언어 사용을 구상과 배치, 구문, 기억과 행동이라는 변론의 요소들을 예로 들고 있으나 수사학은 점차 문체론에 접근하게 되었다. 어떤 좋은 시도 한편의 드라마를 응축시키기 위해서 미사여구를 동원하거나 언어의 고유성을 파괴, 비틀거나 반복과 복선을 가지고 시인만의 고유한 은유적 기법과 응축해서 시적 완성도를 높인다. 직설적인 것이 독자에게 가장 빠르게 의미를 전달할 수는 있어도 문학적 성취도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시의 내면 세계를 살펴보는데 비중을 두기도 하지만 현대시가 안고 있는 외연적 복합성은 작법에 있어 기교적 표현에 불과하더라도 독특한 시어나 시적 표현을 담아 창작해야 한다. 이 시에 인간애가 절절히 베어있음에도 외형적으로는 시적 메타포를 찾기 어렵지만 여운으로 남겨 둔다.
큰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배고픔도 참고 눈물도 흘리지 말라는 어머니의 엄한 교육 뒤에 아무도 모르게 광에 들어가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강함과 약함을 본 충격은 어머니의 참사랑이 정신적으로 각인되었다. 평범한 삶에서 개척하는 삶으로 굳은 의지가 되었고, 시인에게 주옥같은 삶의 지침이 되어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가지게 된다. 욕심 때문이 아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의 노정을 택했던 화자에게 친구들의 만류에도 떠나온 이민의 고행 또한 아픔의 계곡이었을 터 인생을 돌아보며 우수가 아닌 행복의 그리움이 남부럽지 않게 사는 오늘, 어머니가 흘렸던 그 날의 눈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여덟 살 소년 시절 고추에 물집이 생겨도 병원에 갈 수 없었지만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처럼 어머니의 사랑만큼은 넘쳐나게 받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끝이 없다. 국방 경비대로 간 아들을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는 어머니, 이런 어머니이기에 개꿈이라도 자주 보고 싶다는 시인이다.
'울 어머니'에서 '울'이란 우리의 준말로 시어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사전적 의미인 다른 사람들과 대적하는 저항적 울타리, 힘이 되는 일가나 친척의 의미까지 포함된 것으로 우리들의 어머니는 영원한 내편임을 담고있다. 3연은 과거 회상에서 현실로 넘어오면서 어머니는 옷섶에서 나던 비린내를 기억으로 맡으며 생선이라도 가득 남겨 있을 법한 냉장고를 열어 본다.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의 배를 채워주지 못한 어머니, 살아 계셨다면 가난의 눈물이 아니라 대견하고 자랑스러워하실 기쁨의 눈물을 만감이 교차하며 상상을 편다. 어머니와 함께 구운 생선으로 저녁을 드셨을 시인의 몸에서 진솔한 사람의 향, 그리움의 애정이 베여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① 아침 해 떠오르면/조잘조잘 산으로 몰려가는 바람들이/푸라타나스 잎들을 건들고/푸른 언덕에서 이름 모를 꽃들 만나고 있다//바람이 다니는 길목엔/늘 싱그러운 나무들의 춤/처마 끝에 매달린 비어는 덩달아/땡그렁 땡그렁 풍경을 울린다//나 사는 바람 골엔/바람만 다니는 길목이 있다  -<바람이 다니는 길목>  부분

② 어디 강물만 흐르는가/시도/시인도/바람도/사랑도 흐른다//땡그랑/나의 삶도 흐른다  -<흐르는 것이 강물뿐이랴> 부분

2005년 4월 대전일보에 실린 <바람이 다니는 길목>은 제목에서 보듯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을 느끼게 한다. ①의 텍스트는 산행에서 화자를 바람에 비유하며 자연과 교감하고 있다. 바람처럼 새벽등산 길에 만나는 자연은 길목을 만들어 주고 더불어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 숨쉬고 공존하려는 인식, 사회 생활을 하면 그만큼 풍요로워지고 지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②의 텍스트처럼 흐르는 것이 강물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흐르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강물은 장소에 구애 없이 시상에 완전하게 흡수되어 새롭게 재생산된다. 결과보다 흐르고 있는 현재에 중심을 두고 세상을 관조하고 표현되지 않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의 참됨인지 깨닫게 해준다. 이미 알고있는 만고의 진리를 근거로 당연한 사실을 강렬하게 전달하고 독자에게 변할 수 없는 참된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의 서술로 소리에 대한 울림의 시작과 끝의 여운이 남는다. ①과 ②에 나타난 풍경소리가 공통적으로 막연히 세월은 유한하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물에 비친 거스를 수 없는 노화를 바라보며 지나는 것에 대한 한탄이 서려있다.      
산에는 왜 가는가/먼저 간 친구나/어머님이라도 만날까하고/혼자서 간다네 -<산행> 부분처럼 시인은 산을 좋아하며 자주 산행을 하는 시인, 함께 있다가 떠난 빈자리를 찾아 인생무상의 허무를 남은 사람의 몫인 것처럼 달래고 있다. 이 시에서도 어머니는 자연보다 친구보다 우위에 선점하고 산을 찾아 오르게 하는 발길인 셈이다. 시인의 말처럼 운주사 처마에 빈 쇠줄만 바람에 흔들리고 비어는 속세를 두루 다니며 풍경소리를 들려주고 편히 쉬기 위해 대웅전 처마에 돌아와 고운 풍경소리를 상상하듯 어머니의 훤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는 한 시인의 어머니를 포함해서 수천 수만의 어머니의 상징인 것이다. 또한 만물은 자연과 함께 모계를 형성하듯 시인의 자연적 회귀는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의 시름을 잊는 하나의 방편으로 삶이 정해진 굴레의 바깥에 있기를 원한다.  


4.

시인의 아버지는 술 좋아하시고 사람 좋아하시는 한문선생이셨다.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6남매 교육은 오로지 어머니 차지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감수성은 그대로 시로 되살아나 서정성과 시적 메타포를 우러나게 한다.

① 어머니 옷섶에서 나던 비린내가/오늘따라 이렇게 그립습니다  -<학다리 장날> 부분

② 울고 싶을 땐 울고/떠나고 싶을 땐/하늘을 보세요  -<누구나> 부분

③ 지난 세월/슬프고 기쁠 때/어머니는 늘 곁에 계셨습니다  -<성묘> 부분

①의 시적 배경은 한 가정의 생활을 이끌어 가려고 생활전선에 뛰어야했던 모친은 생선 장사를 하셨는데 시인의 나이 31살까지 하시다 젊은 나이 58세에 이승을 떠나셨다. 가끔 장사하시는 생선 시장에 나가 어머니와 함께 있기도 하고, 이른 새벽 함께 삼학도가 보이는 부두에 나가기도 했던 그때가 가장 즐거운 때였고 어머니와 사랑고리를 두텁게 했던 시인은 ②의 텍스트처럼 울어봐도, 어머니가 살던 모국을 방문해 봐도 빈 가슴을 채울 길이 없기에 하늘만 바라본다. ③의 텍스트는 사실을 바탕으로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애들 셋을 데리고 김포공항을 떠난 지가 35년 되었다. 어머니가 구워주던 날치를 찾아 태평양 수산시장이나 샌 페이퍼로 생선가게, 레돈도 비치 생선시장을 드라이브 삼아 나서는 것은 생선에 담긴 아련한 추억과 어머니의 정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나 살아 계신 것처럼 늘 곁에 계신 것으로도 시인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하다.  
몇 편의 시로 한 시인을 분석한다거나 한 권의 시집으로 시인의 시 세계가 전부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다. 그러나 심금을 울리는 언어의 연금술은 불과 한 줄의 언어일 수도 있고 시인의 핵심적인 시어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결합해 한 시대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최석봉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핵심적인 시어는 앞서 거론한 어머니와 산과 바람,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교감하는 직관적 세계가 남다른 것은 바로 시인의 진정한 마음, 그 마음이 선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있다가 없어지는 것
웃음소리
울음소리
있다가 없어지는 것
그것은 슬프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가슴속에 있다가
휭 하니 빠져나간 사랑아

산불로 까맣게 타버린
서 있다가 없어진 나무들
너무 슬퍼할 것 없다

수건 쓰고 호미 든 어머니가
어느 날 훌쩍 가버린 것처럼
있다가 없어지는 것
그것은 진정 슬픈 것이다

                         -<존재와 비 존재> 전문

인간과 자연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것으로 구분 지어왔다. 첫 연에서 인생의 바탕이 되는 희로애락의 굴곡을 그리면서 소멸하는 것이 슬프다고 시인은 말한다. 소멸이란 존재하는 것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웃음과 울음을 통해 생로병사를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2연에서는 첫 연의 대상이 원근법을 따라 구체적으로 화자의 가슴에 닿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사랑이 중심이 된 것은 소리내서 통곡할 수 없는 슬픔은 아쉬운 소멸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3연에서는 어느 순간 화마가 휩쓸고 간 나무의 소멸이 슬프지만 자연의 힘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다시 가꿀 수 있기 때문에 슬픔의 기준이 덜할 수 있다. 4연에서는 슬픔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어머니의 부고를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일 것이다. 서술적 고백이 다소 진부적이지만 참된 독백은 시적 메타포의 미진한 부분을 상쇄하며 참된 자아의 결정체가 된다. 기쁨이 사라진 진정한 아픔, 생명이 영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리를 수건으로 감추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호미 들고 일했을 한 어머니의 고행이 자식의 가슴에 빠져나간 사랑의 정체였고 소멸하는 진정한 슬픔인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싶어도 기다려주지 않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인생무상의 허무 속에 부모가 생존해 계신 시인들에게 돌아가신 후에 열 번을 찾아 묘비에 절하며 후회하는 것보다 오늘 한번 찾아뵙고 문안을 드리는 실천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전이되는 것이며 효도라는 것을 시를 통해 시인은 강조하고 있다.  
    
최석봉 시인의 시적 배경과 한정된 울타리 안에서 몇 편의 시를 살펴봤다. '창조문학', '시와 시학' 등의 각종 문예지와 대전일보, 중도일보 등 일간지에 시가 실려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시문학' 동인들과 함께 문학활동을 하는 것은 긴장감을 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시인이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시 쓰기로 소모한다니 여러 시인 중에서도 완곡한 시인이 아닐 수 없다. 시를 대하는 곧은 자세 앞에 일필휘지의 겉멋만 부리거나 가벼움을 보이는 소수 시인들에게는 표본(標本)으로 삼아야겠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착한 것이라면 삼라만상도 질서를 깨트리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할 것이다. 세상은 악인보다 선인이 많기에 멸망하지 않지만 아름답게 꾸며 가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아들의 부엌 출입도 막으시고 엄한 교육을 가르쳤던 어머니의 깊은 뜻은 세상의 한줄기 빛이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천명을 알고 세상의 아름다운 향기를 널리 펼치라는 것은 아니었을지 헤아려본다.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고국에 대한 향수도 크다. 그것은 조국애와 닿아있으면서 인류애와 합일되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모국이 아닌 타국에서의 삶이 고통과 인내의 점철된 기나긴 노정이었겠지만 어머니를 사랑하는데 그의 피를 나눈 형제와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노인의 얼굴을 보면 가까운 미래의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인생이 무한하지 않고 쉼 없이 흘러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만 걸어왔던 생생한 발걸음은 후세에 오래도록 남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인에게 시의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지만 어머니보다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해 주위를 돌아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끝을 맺는다. 시인의 발걸음마다 아름다운 향기가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 같아 시인을 바라보는 마음이 즐겁기만 하다.


참고
1. <中庸>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2. <盡心章>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兄弟無故一樂也 仰不愧於 天俯不作於人二樂也 得天下英才敎育之三樂也
(군자유삼락이왕천하불여존언 부모구존형제무고일락야 앙불괴어 천부부작어인이락야 득천하영재교육지삼락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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