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 아픔의 봄에

2006.05.05 10:58

한길수 조회 수:670 추천:77


캘리포니아의 4월이 수상하다 가보지 않은 캐나다 밴쿠버의 날씨가 이쯤 될지 알지 못하지만 온난화로 인한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인지 하루걸러 흐린 날과 햇빛 대신 비를 산발하게 뿌리는 날이 많아졌다 마술사의 턱시도 뒷주머니에 꺼냈다 빼는 봄 향기는 내 주머니 속에는 들어있지도 피어나지도 못해 혼란스럽다 정확하게는 머리의 오른쪽 반쯤, 그 경계에서 진을 치고 더 넘어오지도 않고 괴롭히는 술수로 서 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을 더 많게 했다 분명 그 반쯤에 꽁꽁 언 동장군이 마술사로 둔갑했으리라 서울에서 오신 김남조 선생 초청 강연회, 이번에는 초록을 보셨다던 그 느낌에도 봄은 있을 터인데 가까이에 있는 나는 좀처럼 구별이 가지 않는다 문학토방에서 다시 찾는 김소월의 산유화에도 봄의 형체는 구름에 가려 해가 나지 않았다 밥 한 끼 먹어도 식은땀을 비 그친 유리창에 남듯 난 겨울과 봄에게 두 손을 들었다 포박된 몸으로 컴퓨터를 켜고 친구로부터 봄소식을 듣는다 대구미래대학 소나무 숲을 걸으며 날리는 송화 가루로 하늘에 봄을 띄워놓고 손으로 저어놨으니 미국에서 받으면 소식 달라고 했다 짧은 신음이 봄 싹처럼 돋는다 자주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몇 자 글 남기고 옆으로 돌아 선 ‘ㄴ’ 엔터키를 누르고 세상과 단절하듯 잠에 빠졌다 시간이 얼마간 흘렀지만 세상이 단절되진 않았다 아프다는 통증이 여전할 때 지독하게도 멀게 여겼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예언가처럼 그윽한 눈길을 흘리며 꽤 시간이 지나야 봄꽃이 필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말, 항생제와 진통제의 말을 된 처방전을 받으며 청명, 한식이 지난지가 언제인데 그러냐고 눈만 껌벅거리다 나왔다 아직 아지랑이도 보지 못한 이 봄은 길가에 사람들조차 긴소매의 옷에 가려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데스밸리의 길가에 노란 파피꽃이 활짝 피어 봄은 꽃으로 피고 꽃잎 주위에 햇볕을 머금은 자욱이 그윽하다고 사람들은 부산한데 그곳을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몸이 아프다는 느낌보다 4월을 통째로 잃어버린 아픔이 더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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