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 상인 5

2006.08.11 07:29

한길수 조회 수:709 추천:85


성공해 돌아오려고 입술 깨물며 건넌 태평양 바다
일 년 내내 여름 같은 알몸의 서든 캘리포니아
말 더듬어 주문하다 햄버거 두 개 받고 쩔쩔매던    
ESL과정 밟고 경영학 실무 삼아 뛰어든 아르바이트
상가에 다섯 평 남짓 가게 인수 받아 열던 기쁨
긴 목에 도금 줄 걸어주며 달러 세는 쏠쏠한 재미로  
몇 곱절 남기니 사는 맛도 곱절로 웃음꽃 피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에 외로움이 나선형으로 파고든다    
외로움도 나누면 반이라고 사막을 바라보는 사랑
선인장과 야자수 커가는 이국의 밤은 깊어간다
졸업하고 귀국하면 초록빛 바다 같은 꿈길 열리고
스페니쉬 몇 마디는 덤으로 얻어가는 줄 알았다
  
한보그룹 부도나고 굴지의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IMF 허리케인이 한반도 강타하고 폐허로 잔해만 남은
한 학기 채 남지 않은 유학의 끝물에 침몰하는 귀국선

뗏목에 생을 의지한 보트피플은 국경을 넘나들고
도마뱀 꼬리 스스로 자르고 자갈 틈에 몸 숨기지만
애지중지한 살림만 늘어나듯 멀어져 가는 고국 하늘
산타모니카 해변에 앉아 눈 기다리듯 바다를 본다  
절망도 잠시 노란 박꽃 진 뒤 배불러오는 아내  
청춘은 힘없는 자의 아득해져가는 볼멘 목소리  
불법체류자로 두리번거리며 대문에 금줄 거는 슬픔
뒤틀려진 세상에 옹알거리며 쓰러져도 일어나는 아기
널 지키려 살아남겠다는 약속을 아는지 아장거린다    
열 번의 공휴일과 한 달 네 번의 주말이 지나가며
목에 걸린 세금 줄도 살아있다는 소중한 기쁨
돌아가기에 늦어버린 늙어가는 낙타를 누가 기억할까  

이천년 미 연방 센서스 발표는 18만여 한인 불법체류자  
두 가구 중 한가구는 고통 겪지만 불법노동자 일감으로
코끼리가 되어가는 1조 달러 육박하는 미국 지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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