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에서

2006.09.28 11:07

한길수 조회 수:681 추천:75


계곡 한편 대각선사가 세워두었다던 지팡이
흰쌀밥 같은 꽃 피우는 조팝나무로 자라고
약수 마시는 잎사귀들이 기지개 켜며 몸 흔든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물고기 떼 자맥질하며
마중 나오듯 물살 가르는 우거진 숲에 길 내주고
주걱에 새긴 이름들 은덕 쌓아지길 바라지만  
숲길 따라 올라가는 내 흔적일랑 지우고 싶다

얼마를 먼저 있다가 가는지 배낭 맨 여행객들
백양사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내려가는 가벼운 걸음
누군들 오늘까지 힘차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한 일 년쯤 이곳에서 물처럼 살다가도 좋겠지

어디를 떠돌아다녔는지 초췌한 행색의 여자가
격앙된 얼굴로 쉬지않고 외설을 중얼중얼 뽑아내자
정진하는 스님 계시니 조용하라는 듯 보살이
참선해 보지 못한 얼굴로 손을 휘휘 내젓는다
물마시고 내려간다고 정색하며 맴도는 자리 그 자리
오른쪽 머리 통증 계곡물 따라 흘러도 못 막듯
절 밖 소음에도 꿈쩍 않는 사대천왕은 갇혀있다

병원 검사를 마치고 진단을 기다리는 웅얼거림
뇌압 오르는 편두통도 먼지 같은 미움의 뗏장  

조팝나무 꽃잎으로 만들었을 대웅전 불전함
부처에게 고개 숙이던 먼 먼 기억의 조부 조모
그 흉내를 내자 부처 입가에 계곡에서 흐르는 웃음
왼쪽 새 법당 반쯤 짓고 남은 목재와 기왓장
대웅전 앞 보리수 칠월의 열매로 풍성한데
내 안에 성당 놔두고 조팝꽃 핀 허공에 탑 세운다
문득 가슴에 쌓아놓은 기왓장 살며시 내려놓고    
바깥 그 여자 어떤지 눈길이 먼저 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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