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무덤
2009.12.30 06:38
거리에 흩어진 게슴츠레한 저녁
현관 문 앞 등불에 몸 드러누워
이리저리 그어놓은 생의 낙서
방 한 칸 없어도 거뜬히 산 삶
지나온 발자국마다 검은 유서 남기고
말라비틀어진 투명한 무덤으로
더듬이 촉수 잃고 주저 앉아있다
풀잎 창끝에 찔려 소스라치고
개미에게 쫓기던 다리 없는 몸
미끈한 유약도 결국 통증일 뿐
상처에도 내일은 오고야 마는데
지상에 내리는 따뜻한 어둠의 천막
남 탓 해본 적 없는 느린 걸음
귀가할 수 있는 집이 아늑하다
모반의 풍요로운 치장 벗어던지고
훨훨 나는 풀벌레에 시기(猜忌) 버린
가릴 것 없는 가난의 벌거벗은 몸
시큰거린 외출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에 내몰리는 민달팽이철거민
지상의 빈 무덤조차 없는 삶이
죽은, 죽음들이 도처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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