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릴레이> 이승하 동인에게/한길수 -펌

2007.08.28 02:58

한길수 조회 수:263 추천:15

승하 형께  

안녕하세요? 승하 형.

한국은 연일 폭염, 게릴라식 장마로 인해 후덥지근한 날씨로 고생하시나 본데 어찌 지내시는지요?
이곳은 예전 같지 않게 서늘하기만 합니다. 말라깽이 주형이와 예술가의 꿈 키워가는 민휘는 잘 있는지요? 아주머님께도 안부 전해 주세요.  

제 자신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많은 분들의 염려 덕분에 건강은 많이 좋아졌어요. 빠진 머리카락도 이제 나기 시작하고, 팔과 다리도 가끔 저리기는 하지만 움직이거나 일상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어요. 간혹 물체가 겹쳐 보이는데 운전을 하다보면 빠르게 지나는 차 때문에 어지럽기도 해서  운전이 조심스러웠는데 이제 편안하게 운전하고 다닙니다. 한동안  집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는 호사를 누리고 다녔지요.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회복하려면 보통 일 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조바심가지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제가 병마에 시달릴 때 하필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했는데 조금만, 가까운 주위를 둘러보니까 아픈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하필 제가’가 아니고 ‘누구나’였을 정도로 크고 작은 아픔들이 보였습니다. 자연과 벗하며 살 때는 빠르게 산다는 것을 몰랐는데 세상과 부딪쳐 살아보니 빠르게 지나가는 것은 세월이 아니고 제 자신이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육신을 혹사시키고 있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고, 남들이 걸으면 전 뛰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저만 뛰며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이렇게 뛰어 다니니 없던 병도 생기고 알던 병도 키워서 갑자기 쓰러지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느림의 미학을 깨닫고 서둘지 않고 누가 뭐라고 해도 여유를 가지는, 남들이 객기라고 해도 부리려고 합니다.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는 제가 고집하는 잣대로 원칙만을 내세우지 않고 모난 돌이 둥근 돌보다 상처를 더 받는 것처럼 둥글게 살려고 합니다. 조금 손해 보는 기분이 들겠지만 나중에는 마음에 이자가 붙을 것입니다.  

승하 형,  
형과 함께 요세미티와 세쿼이아 팍 여행을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모닥불 피워놓고 밤새 나눈 이야기들이 아직도 별처럼 반짝거립니다. 그때만 해도 건강은 아주 자신 있었고, 몇 날 밤을 지새워도 끄떡없다고 믿었으니까요. 제 삶의 전차가 정거장을 만나 뒤돌아보며 푸른 숲과 들을 보게 되었지요. 앞만 보고 살았던 삶에 쉼표를 찍었던 여유가 좋았었습니다. 힘들게 살아왔던 이민생활에서 정신의 배고픔을 문학으로 채우며 어릴 적 꿈을 키워가던 희망이 열매로 영글어 가고 있다고 믿었지요. 레익 타호의 넓은 호수를 형과 함께 보면서 형이 놀라는 것보다 미국에 20년 살면서도 처음 가보는 곳에 대한 제 놀라움이 더 컸었습니다. 사는 곳에서 불과 4시간이면 되는데 다니게 되질 않는 것은 욕심 때문이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조금씩 가져보려고 합니다.  
지난 메모리얼 연휴에 가게 문을 닫고 가족과 카타리나 섬에 다녀왔어요. 바다 밑 고기들을 보면서 환성을 지르는 두 딸은 좋아서 입이 귀에 닿았고, 집사람은 경비가 많이 든다고 눈 흘김 하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입니다. 하루 코스였지만 다녀오니까 건강했을 때 한번이라도 더 이런 좋은 곳에 와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소 승하 형이 말씀했던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예전 같지 않는 캘리포니아 날씨가 오랜 가뭄으로 농작물은 수확이 줄고 건조한 산들은 툭하면 산불이 납니다. 이상기온 현상이 연일되어 재앙까지는 아니지만 습도가 높아지고 불쾌지수도 올라가네요. 인간이 만든 환경파괴의 산물인 셈입니다.  값싼 노동력의 대가로 중국산이 많아졌고 식탁에는 중금속 오염된 먹을거리가 올라옵니다. 생필품의 내용은 믿을만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가까운 인근 바닷가에서 잡은 고기들도 이제는 오염되어 당국에서조차 먹지 말라고 합니다. 어떻게든 피폐해가는 자연 생태를 살리는데 힘써야하고 푸른 숲과 맑은 강을 유지해야겠지요. 이런 노력과 함께 더불어 중요한 것이 인간성 회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 수익과 고도성장을 위해 남이야 죽든 말든 못된 술수를 써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의 양심을 살리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책방에도 경제와 투자에 관한 책은 가득한데 문학과 예술분야의 코너는 줄어간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꿈처럼 군인이 되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이제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학이 거듭나서 서로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회로 돌아가고, 인간의 양심이 살아서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선한 마음들도 오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병들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고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훗날 형과 함께 계곡의 맑은 물에 발 당구며 고기를 잡고, 소박한 꿈 나누며 문학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처음에는 승하 형이 너무 말라 건강이 걱정 되었습니다. 바람만 불면 쓰러지겠다고 함께했던 지인들과 귓속말을 주고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가 아파서 심려를 끼쳤습니다만 그래도 후학을 위해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고, 문학의 올바른 길을 닦는데 전념하시는 승하형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몸 잘 돌보시길 바랍니다.    
다시 안부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7년 8월 26일  
미국에서 길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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