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 -김기택
2011.04.03 10:14
말들은 풍선껌처럼 둥글게 부풀고 있다 제각기 하나씩 꼬리를 달고 지껄이는 얼굴들 위로 떠오르고 있다 말풍선들은 오줌 마려운 방광처럼 탱탱하다 오줌이 곧 터질 것 같은 급한 목소리들을 먹고 심장의 두근거림과 허파의 공기를 빨아들이며 한껏 뚱뚱해져 있다 입에서 나올 때는 비명 같았는데 부풀어오르니 부력이 큰 공기이다 입에서 나온 것은 찐득찐득한 점액질이었는데 떠오르니 솜털 같은 날개가 다닥다닥 달린 먼지들이다 입에서 나올 때는 살갗처럼 질겨 보였는데 붉고 선명한 핏줄들이 촘촘하게 뻗어 있었는데 떠오르니 비눗방울처럼 투명하고 명랑하다 너무 얇아 곧 터질 것 같다 입에서 나올 때는 오줌 줄기처럼 급하고 뜨거웠는데 떠오르니 배때기가 출렁거리는 느린 구름이다 말풍선들은 창문을 기웃거린다 천장을 밀어 올린다 가벼워진 의자와 탁자들이 자꾸 들썩거린다 건물 창마다 말풍선 달린 사람들이 보인다 창틈으로 빠져나온 수많은 말풍선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한가하던 허공도 하늘도 시끄럽다 간판에 유리창 선팅에 현수막에 포스터에 티셔츠에 신문에 여성지에 핸드폰에 닥치는 대로 말풍선이 달라붙고 있다 거리는 거대한 만화책이 되어 있다.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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