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 -조 정
2011.04.13 10:51
눈이 수평선을 지우고 바다가마우지 떼를 지우고 온다 소나무 숲을 지나 송림 슈퍼에서 뜨거운 커피를 산다 알루미늄캔 속에 출렁이는 바다 낡은 목도리를 두른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끊어진 길을 위해 낡은 자전거를 불태운다 딛고 올라가기에 인생만큼 부실한 사다리도 없다 많은 침묵을 풀어 물위에 내려놓은 사람들이 바다를 빠져나간다 굳이 떠나야만 했던 길을 되짚어 가는 동안 눈은 한정 없이 쏟아지고 출항을 포기한 집들은 문을 깊게 닫고 잠이 들 것이다 빈 탈의실이 문도 없이 떨고 서 있다 푸른 비치파라솔을 그려 넣은 옆구리에 한 사내가 오줌을 눈다 내가 그만 바다와 저 비굴한 기다림과 이 추위 속에서 길을 잃을 것만 같다 빈 캔을 주머니에 넣고 운동화를 벗어 털면 병든 시계바늘이 쏟아진다 엇갈린 바늘처럼 비명을 지르는 시계가 내 발바닥에 고인다 제 때 제 곳으로 가지 못하는 발을 위해 나는 발목을 불태워 버린다 거대한 냉기가 모래를 헤치고 엎드려 손을 내민다 조금 더 내리고 말 눈이 아니다 바다가마우지가 바다를 통째로 삼키고 올라온다 올라오지 않는다 바다가 큰손으로 나를 구겨서 쥔다 전남 영암 출생 1998년 국민일보 신앙시 공모 최우수상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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