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저녁을 닮은 단추 -맹문재
2011.05.02 10:26
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조여진 볼트처럼 단단하다 아무도 나의 결정을 거절하지 못하게 내 목을 내놓고 있다 이 섬세함이나 화려함을 나는 사치라고 여기지 않는다 보잘것없고 저속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물먹은 신발 같은 외로움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침신문을 타들어가는 톱밥처럼 들여다보면서도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보지 않는 사람은 나를 못 보겠지만 나는 뜨겁다 주인 냄새를 맡는 개처럼 선택한 길에 나는 달라붙어 있다 난전에 쪼그려앉은 보따리장수처럼 나는 밖을 부지런히 내다보고 있다 나약함이나 무기력은 나에게 적이다 하류인생들이 구더기처럼 우글거리는 새벽 인력시장을 나는 싫어하지 않는다 밤잠을 설친 아침 코피를 쏟으면서도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골목길 끝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같이 나는 지도를 품고 있다 상사 앞에서 변명하는 동안에도 나는 신념 한 포기를 키운다 물건값을 맞추기 위해 시장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면서 나는 책처럼 사람들 소리를 담는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힘겹게 그네를 탈 때 나는 파랑새를 날리기도 한다 텔레비전의 코미디언 웃음에 기름 범벅처럼 빠지면서도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 겨울 저녁, 나는 사막 같은 지하 작업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나를 태우고 있었다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에서 수학 1991년 『문학정신』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1993년 전태일 문학상, 1996년 윤상원문학상을 수상 시집으로 『물고기에게 배우다』, 저서로 『한국민중시문학사』, 『페미니즘과 에로티시즘 문학』, 번역서로 『포유동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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