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역에서 -위선환
2011.06.03 05:00
열차는 오지 않았다 창유리는 없고 뼈대만 남은 창틀 너머로 빈 들이 내다보인다 저기서 사는 새는 다리가 길고 한 발을 들고 서서 발목이 가늘어지고 있다 창틀 아래에 기댄 긴 의자의 등받이에는 등을 기댔던 자국 하나 찍혀 있지 않다 나는 오래 기다렸으므로 겨우 버티고 서서 무릎에 찬물이 고이는 오한을 견디었다 그사이에 들 바닥에는 바람이 잦아들고 티끌은 가라앉고 서리는 아침에 내렸고 낮에도 우는 귀뚜라미가 긴긴 더듬이를 누이고 잠든 대합실 어둑한 구석에서 손톱이 까만 여자가 치마를 올려서 가느다랗고 숯같이 검은 발목을 보여준다 1941년 전남 장흥 출생 1960년 용아문학상 수상 2001년에 월간《 현대시》를 통하여 작품활동을 재개 2009년 현대시작품상 수상 시집 『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눈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새떼를 베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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