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함바집 -공광규

2011.06.03 05:07

한길수 조회 수:386 추천:18



멈춘 시계가 5시 53분을 가리키고 있는 저녁 폐자재가 굴러다니는 강변 목련나무 아래 함바집은 판자를 덧댄 문을 헌 입처럼 가끔 벌려서 개나리나무에 음표를 매달고 있습니다 멀리서 기차는 시간을 토막 내며 철교를 지나고 술병을 세운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얼굴에 팬 주름을 악기처럼 연주하며 뽕짝으로 지르박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없는 날에도 기차는 녹슨 철교 위에서 여전히 시간을 토막 내며 지나고 자동차는 요란한 청춘처럼 잘못 살고 있는 중년처럼 속도를 몸을 위반하며 지날 것입니다 강물은 길이를 잴 수 없을 만큼 흘러가고 풀잎은 수없이 시들고 또 새 풀잎을 낼 것입니다 사랑도 몸도 연꽃처럼 시들고 구겨지고 전등은 여전히 인생을 측은하게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가 없는 날에도 목련나무 아래 함바집 녹슨 난로 옆엔 사람들이 따뜻하게 늙어갈 것입니다 종교처럼 늙어가는 술집의 멈춘 시계는 여전히 저녁 5시 53분을 가리키고 있겠지요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86년 ≪동서문학≫ 등단 1987년 《실천문학》에 현장시들을 발표 시집 『대학 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말똥 한덩이』등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1
전체:
93,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