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점 -신영배
2011.06.03 05:27
베란다에서 뽑힌 머리카락은 베란다에서 자란다 보도블록 위에서 뽑힌 머리카락은 보도블록 위에서 자란다 테이블 앞에서 뽑힌 머리카락은 테이블 앞에서 자란다 엘리베이터에서 뽑힌 머리카락은 엘리베이터에서 자란다 침대에서 뽑힌 머리카락은 침대에서 물속에서 뽑힌 머리카락은 물속에서 거울 속에서 뽑힌 머리카락은 거울 속에서 꿈속에서 뽑힌 머리카락은 꿈속에서, 자란다, 손아귀들의 한낮 검은 바람결이 목을 감는다 손아귀들이 연체동물처럼 스멀스멀 저녁의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자들이 죄다 머리가 잡혀 저녁의 점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얼어붙어 집으로부터 떨어진 점이 된다 둥근 나무들의 여백 사이로 발 없는 여자가 달린다 베란다에서 자라는 검은 식물 속으로 모공의 꿈속으로 침대와 엘리베이터와 테이블과 보도블록과 물빛이 함께 있는 거울 속으로, 달린다. 점이 될 때까지 1972년 충남 태안 출생.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기억이동장치』『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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