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하는 건물 -연왕모

2011.07.13 09:51

한길수 조회 수:311 추천:13



그 건물은 우직해 보여도 들어가고 나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투성이라고 여행자들은 말해주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다움의 한 형태로만 받아들였다 그들은 떼를 지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직 햇빛 비치는 길을 더듬어나간 자들만이 출구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건물 안의 인공조명은 햇빛보다 더 밝고 편안하게 느껴졌으므로 아무도 햇빛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퍼석퍼석 말라가는 몸은 그저 풍요로운 시간에 따른 무관심의 결과라 여겨졌다 보습제를 사서 바르는 건 오히려 가진 자들의 영광이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는 줄도 모르고 그들은 번들거리는 얼굴을 뽐내며 다녔다 때로는 온몸이 말라 쓰러지는 사람들이 목격됐으나 그것조차 빛의 공급과잉에 의한 현기증으로 치부되었다 그 건물은 여전히 양생 중이었다 새롭게 들어오는 모든 입자들은 단단하게 콘크리트 건물의 일부가 되었다 1969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94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개들의 예감』『비탈의 사과』 1998년 '현대시동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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