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공화국 -문성해
2011.07.13 09:54
도서실 컴퓨터실에 붙박이로 앉은 사람들 젊어서 천천히 찌그러지고 있는 사람이나 늙어 한꺼번에 찌그러진 사람이나 모니터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웃거나 한숨을 쉬거나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지독한 모니터와의 사랑이다 제가 궁금하면 검색해 보세요 그 남자는 여유 있게 말했다 나는 쿠키를 오븐 없이 굽는 방법을 검색하며 쿠키도 프라이팬에 구울 수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컴퓨터실이 떠나가게 이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모두들 천기를 누설 받는 결연한 표정들이기에 관두기로 했다 나는 계속해서 마른 하늘에 비가 내리게 하는 법과 물속에서 물고기랑 오래 대화하는 법을 내리 검색했다 화장실 가는 길에 훔쳐본 옆 사람의 모니터에서 깨알 같은 활자들이 기어 나오고 화장실 앞에서는 한 남자가 핸드폰으로 아내의 잔소리를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오후 여섯시, 사서들은 더욱 길게 늘어진 얼굴로 부은 발목을 주섬주섬 구두 속에 꽂아 넣는다 이용객 여러분, 오늘의 검색 놀이는 이만 끝입니다 도서실 퇴장을 알리는 노래가 나오면 의자에 눌러 붙은 살을 우두둑, 떼어내고 일어서는 사람들 속수무책의 손가락을 덜렁거리며 우울한 침팬지들이 쏟아져 나온 오후 여섯시 이후의 거리는 묻지 마 관광버스처럼 털털거리고 도무지 검색이 안 되는 너는 모호한 이 저녁은 실로 두렵기까지 하고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자라 』『 아주친근한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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