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천막 -이생진
2011.08.03 10:05
어허, 이 사람 어디 갔네 천리길 마다 않고 찾아왔는데 어디 갔네 서귀포가 아무리 따뜻하다 해도 얇은 천 천막 하나로 이 겨울을 어떻게 빠져나가려는가 벌써 한라산은 흰 눈으로 덮였는데 얇은 천 천막 하나로 30년을 버텨왔으니 내 말이 귀에 들어가겠나만 그래도 시 읽는 사람을 보고서 어찌 이대로 지나갈 수가 천막 앞에 서서 자네가 읽던 시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라는 시 헛기침으로 날려보내고 돌아서네 술 마시러 갔나 품팔러 갔나 날품이라도 먹고 살기엔 시보다 나으니 일자리나 있으면 좋겠네 멍하니 천막 앞에 서 있다 가네 칼날 같은 수평선만 바라보다 가네 유치한 짓이지만 자네와 걷던 언덕길 자네와 술 마시던 구멍가게 자네와 서 있던 자판기 앞을 아무도 모르게 기웃거리다 가네 *시집『그리운 바다 성산포』 ‘수평선’에서(2009.11.20) 1929년 충남 서산 출생 《현대문학》등단 1996년 윤동주 문학상 수상 2002년 상화(尙火)시인상 수상 시집으로『그리운 바다 城山浦』,『거문도』,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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