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억새를 위하여 -김수열
2011.08.03 10:13
겨울비 내린다 억새를 예찬하던 축제는 끝났다 축제를 기억하는 건 사라져버린 폭죽과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휘청거림 억새가 죽고 가을이 끝났다 가을과 함께 억새들도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은 괴괴하다 죽은 억새는 죽어서 살아 있다 억새꽃 백발이 성성할 무렵 이파리는 앞다투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땅바닥에 머리를 베고 미련 없이 떠났다 죽어야만 산다는 걸 그네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 땅에 머리를 박은 뿌리는 더욱 처연했다 실핏줄은 죄다 잘라내고 팔 다리도 아낌없이 떨쳐버리고 땅 속 깊이 뿌리를 대고 오로지 가슴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야지만 그나마 살 수 있다는 걸 그네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야지만 먼길을 돌아온 억새꽃 하나 여기 설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겨울비를 받아들이는 그네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59년 제주 출생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바람의 목례』 산문집으로 『김수열의 책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등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4 | 폭설의 반대편 폭우의 건너편 -이야기의 끝 -김중일 | 한길수 | 2011.08.23 | 429 |
43 | 살바도르의 시계 -서영처 | 한길수 | 2011.09.23 | 426 |
42 | 저작권법 시행에 따른 게시물 삭제 | 한길수 | 2009.07.22 | 421 |
41 | 과녁 -이동호 | 한길수 | 2011.07.13 | 420 |
40 | 적벽에 다시 -조용미 | 한길수 | 2011.02.13 | 416 |
39 | 낮달 -나호열 | 한길수 | 2011.07.03 | 411 |
38 | 사막을 건너는 낙타표 성냥 -최치언 | 한길수 | 2011.09.23 | 409 |
37 | 시그너힐의 집배원 -강경보 | 한길수 | 2011.08.13 | 403 |
36 | 감각으로의 귀환 -윤의섭 | 한길수 | 2011.07.23 | 402 |
35 | 그 골목은 세상을 모두 둥글게 잠재운다 -김영남 | 한길수 | 2011.05.13 | 399 |
34 | 춤추는 거울 -김형술 | 한길수 | 2011.11.13 | 394 |
33 | 마장동 불립문자 -조연향 | 한길수 | 2011.08.03 | 393 |
32 | 모네의 저녁 산책 -조연호 | 한길수 | 2011.09.03 | 387 |
31 | 늙어가는 함바집 -공광규 | 한길수 | 2011.06.03 | 386 |
30 | 검색 공화국 -문성해 | 한길수 | 2011.07.13 | 376 |
29 |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김왕노 | 한길수 | 2011.05.13 | 376 |
28 | 안개사용법 -안현미 | 한길수 | 2011.06.03 | 366 |
27 | 바다가 나를 구겨서 쥔다 -조 정 | 한길수 | 2011.04.13 | 366 |
26 | 누군가 내 바코드를 읽고 있다 -변종태 | 한길수 | 2011.06.13 | 364 |
» | 죽은 억새를 위하여 -김수열 | 한길수 | 2011.08.03 | 3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