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워진 등짝 -황병승
2011.09.03 09:09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다 작년 이맘때는 실연失戀을 했는데 비 내리는 우체국 계단에서 사랑스런 내 강아지 짜부가 위로해주었지 '괜찮아 울지 마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짜부는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잘도 뛰어내려갔지 나는 골치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짜부야 짜부야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을 텐데!" 소리치기도 귀찮아서 하늘이 절로 무너져내렸으면 하고 바랐지 작년 이맘때에는 짜부도 나도 기진맥진한 얼굴로 시골집에 불쑥 찾아가 삶은 옥수수를 먹기도 했지 채마밭에 앉아 병색이 짙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걱정하지마 아직은 안 죽어' 배시시 웃다가 검은 옥수수 알갱이를 발등에 흘렸었는데 어느덧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 또다시 와서 지나간 날들이 우습고 간지러워서 백내장에 걸린 늙은 짜부를 들쳐업고 짜부가 짜부가 부드러운 앞발로 살 살 살 등짝이나 긁어주었으면 하고 바랐지 1970년 서울 출생 2003년 <파라para21>로 등단 시집 『여장 남자 시코쿠』 『트랙과 들판의 별』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4 | 카프카의 오후 -하재연 | 한길수 | 2011.09.03 | 473 |
63 | 폭설, 민박, 편지 2 -김경주 | 한길수 | 2011.09.03 | 287 |
62 | 모네의 저녁 산책 -조연호 | 한길수 | 2011.09.03 | 387 |
» | 가려워진 등짝 -황병승 | 한길수 | 2011.09.03 | 3009 |
60 | 꽃과 저녁에 관한 기록 -고영민 | 한길수 | 2011.08.23 | 465 |
59 | 폭설의 반대편 폭우의 건너편 -이야기의 끝 -김중일 | 한길수 | 2011.08.23 | 429 |
58 | 어느 생애 -손진은 | 한길수 | 2011.08.23 | 347 |
57 | 쇠소깍, 남쪽 -강영은 | 한길수 | 2011.08.23 | 226 |
56 | 고흐 씨가 죽은 여름 -유현숙 | 한길수 | 2011.08.13 | 326 |
55 | 캄캄한 울음 환한 폐가가 되었다 -강해림 | 한길수 | 2011.08.13 | 434 |
54 | 나는 그림자를 흘리는 버릇이 있다 -박남희 | 한길수 | 2011.08.13 | 334 |
53 | 시그너힐의 집배원 -강경보 | 한길수 | 2011.08.13 | 403 |
52 | 루파나레라 -최재영 | 한길수 | 2011.08.03 | 434 |
51 | 죽은 억새를 위하여 -김수열 | 한길수 | 2011.08.03 | 358 |
50 | 그 사람의 천막 -이생진 | 한길수 | 2011.08.03 | 283 |
49 | 마장동 불립문자 -조연향 | 한길수 | 2011.08.03 | 393 |
48 | 케미컬라이트* -그리운 통점痛點 -고경숙 | 한길수 | 2011.07.23 | 333 |
47 | 전화보다 예감을 믿는 저녁이 있다 -박용하 | 한길수 | 2011.07.23 | 567 |
46 | 오래된 마루는 나이테가 없다 -차주일 | 한길수 | 2011.07.23 | 442 |
45 | 감각으로의 귀환 -윤의섭 | 한길수 | 2011.07.23 | 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