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방을 꿈꾸는 밤 -이근일
2011.09.23 08:00
또 하나의 죄를 몸 속에 쌓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사찰앞을 서성거립니다 담 너머 법당안에 연등이 환하게 켜지고 나는 그곳에 등을 돌리고 앉은 부처를 봅니다 슬픔보다 하얗고 차가운 눈송이들이 순간 내 늑골을 마구 뭉개며 밀려왔다, 밀려나가고 나를 에워싼 몇그루 순백의 시간들 사이에서 나는 자꾸 비틀거립니다 캄캄한 허공에 아름다운 원을 그리는 저 한쌍의 새처럼 나는 지난날의 그 붉은 방을 허공에 떠올려 봅니다. 당신과 내가 있고, 막 불을 피운 난로가 있고 우리가 숱하게 지새운 눈물의 밤들이 난로 위 주전자에서 부그르르 끓고 있는 그러나 이내 몰아친 눈보라가 그 붉은 방의 창문을 뭉개고 꼬옥 껴안고선 말없이 더운 김으로 피어오르던 한 몸뚱이를 뭉갭니다 전생에 품은 그 불순한 사랑에 대한 업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쌍의 새가 뾰족한 입을 맞추며 포르르르 떨어져 내리는 밤, 나는 술에 취해 자꾸만 비틀거립니다 눈보라 속에 붉은 한시절 잃고 그만 쓰러집니다 당신을 잃고, 나를 잃고 1979년 경기 고양 출생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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