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낙타표 성냥 -최치언
2011.09.23 08:26
성냥갑 그림 속의 낙타는 초식동물이다
낙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인을 잡아먹지 않는다
낙타와 단둘이 사막을 건너는 이들은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주인은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하면
낙타의 물혹을 잘라 갈증을 해소한다
물론 그 낙타는 죽는다 낙타는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으므로
오아시스 있는 곳을 항상 정확하게 기억해둔다
만약 오아시스가 기억을 배반한다면
낙타는 그때부터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도 낙타의 눈치를 본다
아주 지루하고 기나긴 사막의 길을 두 동행자는
사형수와 간수처럼 서로 의심하며 초조히 가는 것이다
사막의 밤은 깊어가고 낙타가 잠든 사이
주인은 제 집 담을 뛰어넘는 도둑처럼 낙타의 목을 내리친다
그때 낙타의 눈빛을 보았는가 촉촉이 젖은 마지막 희망의
오아시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것으로 모든 의심은 끝이 난다
사막에서 죽은 자들은 항상 낙타보다 몇 발 앞서 쫓긴 자처럼 쓰러져 있다
그때 낙타의 혹을 물통처럼 열고 주둥이를 들이밀었던
죽은 자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보았는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들고
막다른 제 집 광 속에 갇혀 불안에 떨고 있는 저 도둑의 손끝에서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낙타표 성냥 한 갑을
당신은 본 적이 있었던가 그림 속의 낙타는 왜 항상 혼자
오아시스에 도착하고 있는가
1970년 전남 영암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등단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등단
시집으로『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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