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오두막

2007.02.16 07:11

고대진 조회 수:107 추천:2

몇 년 전 버지니아의 작은 도시를 지나다 들린 미술박물관에서 모네의 ‘바렌지비의 어부의 오두막’을 만났다. 우연히 들린 책방에서 잡은 책 속에 보고 싶던 그림을 보아도 반갑기 그지 없는데 보고 싶던 진짜 작품을 만나다니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잃어버린 첫사랑을 다시 만난 듯 가슴이 짜릿해왔다. 그림 속에 나를 집어넣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돌아가다가도 다시 되돌아오고 몇 번을 되풀이하자 그림을 지키는 감시원이 수상하게 여겨 계속 내 뒤에 서서 지키던 작품이었다. 이 그림은 화면을 사선으로 이등분한 구도로 사선 위에는 멀리로는 쪽빛 바다가 펼쳐져 있고 아득한 바다 수평선 가까이 흰 돛단배들이 떠있다. 사선 아래 근경으로는 작은 잡목이 우거진 언덕이 있고 언덕 위에는 아담한 빨간 지붕의 오두막집이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홀로 서있다. 마치 멀리 수평선 가까이 떠있는 흰 돛단배를 지켜보고 있는 듯이 바다로 향해 돌아서 있는 저 오두막집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림이다. 이 오두막엔 사람의 그림자가 없다. 주인 어부는 먼 바닷가로 나가 오래 돌아오지 않은 듯 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봄 바람이 오두막을 감싸고 있고 봄볕은 언덕을 따스하게 내려 쪼이고 있다. 만일 누가 살고 있다면 마당에 빨래 줄에 하얀 빨래가 바람에 날리거나 하늘색의 커튼 자락이 창문 밖으로 조금은 나와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사람의 그림자가 안보여도 무척 행복하게 보일 것 같은데 이 오두막은 그냥 비어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봄의 따스함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 이해인 시인의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라는 시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 지어줄 /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버거워질 때 우리는 멀리 떨어진 쓸쓸한 곳에 빈집이 되고픈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늘과 별이 보이고 바다까지 잘 보이는 어부의 오두막 같은 집이면 좋다. 하지만 빈집은 오래 빈집으로 남으면 폐가가 된다. 빈 집은 누군가 들어와야 하고 들어올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은 빈 집에도 희망이 있다. 홀로 멀리 있어도 누가 오리라는 기다림은 항상 이 그림 속의 따스한 봄날을 생각하게 한다. 이 오두막이 있는 바닷가 언덕은 어릴 적 고향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때를 생각나게 한다. 제주도 서해안에 위치한 우리 마을에는 까마귀 동산 이라는 언덕이 있었다. 언덕 아래 멀리로 하늘과 바다가 닿아있고 밤이면 작은 섬 ‘비양도’에서 비추는 등대가 ‘등대불 깜암빡’할 때마다 한번씩 빛을 뿌렸다. 아버지는 바다건너 공부하러 가신지 오래고 어머니는 일을 나가셔서 며칠 만에야 한번씩 돌아오시곤 했다. 나는 동산 위에 올라 바다를 보며 바닷가 길을 따라 먼지 나는 버스를 타고 오실 엄마를 기다리곤 했다. 굳이 언제 오신다는 말씀도 없었지만 혹시나 오늘은 하며 엄마를 기다리던 봄날. 유채꽃이 만발한 밭을 지나 불어오는 부드러운 마파람이 얼굴을 따스하게 감싸고 노란 밭 너머로 검푸른 바다에 떠있는 고기잡이 배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어릴 때의 아스라한 기다림의 기억이 노랗게 혹은 하얗게 팔랑대는 나비처럼 떠오른다. 모네는 노르망디 해변에 위치한 이 언덕을 소재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렸다. 이 집을 소재로 한 그림만 해도 높은 언덕에서 아래로 보며 그린 그림, 아래서 위로 보며 그린 그림, 그리고 집과 눈높이를 같이하여 그린 이 그림이 있다. 동산 수풀 아래로 내려가는 길 또 한 그의 다른 그림의 소재가 되었으니 이곳은 그에게도 돌아가고 살고 싶은 외딴 마을의 빈집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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