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수필 - 과외공부 / 김영교

2017.02.05 07:15

김영교 조회 수:137

 

 과실수 신문광고를 보고 선택된 사과나무 한 그루가  이사온 그 해에 우리집 뒤뜰에 정성스레 심겨졌다. 아담의 사과, 뉴톤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는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사과 시리즈이다.  우리 집 뒷뜰 사과를 보태면 재미있는 4대 사과 시리즈가  만들어 진다.  생선뼈를 묻어주고 하루 종일 머물다 가는 햇볕 덕분에 금년에는 벌써 12개나 사과 알을 품고 있다. 가지 무게를 작대기로 고여 주며 정성을 들였더니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탐스럽다. 오른 편에 있는 감나무와 더불어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니 과수원 풍경이다.

   이제 뒤뜰의 사과나무는 의미 있는 삶의 창이 돼주고 있다. 겨울을 견디고 어두운 밤을 통과한 사과라야 달다고 한다.  나는투병의 겨울을 지나왔기에 사과나무 앞에 설 때마다  달디 단 성품으로 성숙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사과가 되고 싶다고 읊조린다.  하루에 한번 이상 나는 다가간다.  필요할 때마다 보살피고 다독거려 주는 농부친구가  되어준다. 이제 사과나무는 일찍 눈을 뜨고  가슴을 활짝 열고 아침 햇살을 마주한다.  내가 정성스레 심은 것은 가능성이었고 건강에의 꿈이었다. 함께 잘 자라자고 약속도 주고받았다.

결실을 거두기 전부터 나는 계수를 하고 있었다. 제일 잘 익은 2개는 어머님께, 두 아들네 집에 4개, 동생 같은 이웃 정애 후배에게 2개 그리고 나머지는 우리 몫으로 4개나 남게 된다. 가슴이 설레었다. 나누어 먹는 그날을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그 날은 화요일이었다. 베이 윈도우가 있는 창틀 앞에서 사과나무를 내다보니 8개 밖 에 안 보인다. 또 세어 봐도 마찬가지다.  참, 이상하다. 마침 황 집사가 다녀간 화요일이라 조수로 일하는 보조 정원사가 따 먹었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이 주부농부를 위해 사과는 12개 고스란히 나무에 붙어 있어야했다. 볼그스름 수줍게 익은 내 가족...어디로 사라졌나, 속이 상해왔다. 4개나 따 먹다니... 뒤뜰로 들어오는 철문 열쇠는 정원사만 가지고 있으니 틀림없었다. 저녁에 전화를 걸었다. 자기 종업원들은 남의 과일에 손대는 일이 없다는 황 집사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종업원들 단속 잘 지킬 것을 당부하는 내 할 말만 일렀다.

어떤 바보라도 사과 속의 씨는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러나 씨 속의 사과 수는 하늘만이 알고 있다 하지 않는가. 사과 씨를 헤아리는 것과 심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나는 12개나 되는 사과 수는 잘 세고 사과나무를 잘 심어 키운다는 자부심은 가졌지만 어리석게도 없어진 4개에 나는 불평했고 남아있는 8개를 감사하지 않았다. 그 후 사과 알이 자꾸 줄어들었다. 7개, 드디어 5개가 남겨지자 불안한 마음은 그중 잘 익은 것 2개를 미리 따서 어머님 몫으로 간수했다. 더 익도록 3개를 남겨두고  황 집사에게 이번에는 전화는 걸지는 않았다.

그 날은 토요일이라 파머스 마켓에서 사온 채소를 씻느라  베이 윈도*를 통해 밖을 내다보며 수도 앞에 서있었다. 햇빛은 뒤뜰 정원수들을 푸르게 흔들어주며 이파리들은 바람에 살랑거렸다.  기분 좋은 쾌청의 주말 오전이 었다.  별안간 담벽 위에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내 시선에 잡힌 다람쥐 한 마리, 타잔처럼 휘이익- 사과나무에 건너와 사과를 따 입에 물고 담벼락 위로 되돌아가 꽁지를 치켜세우고 사과를 돌려가면서 야금야금 먹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범죄현장을 목격 해 가슴이 쿵쿵 뛰었다.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   급히 카메라를 찾아 현장을 잡아두었다. 근처에 큰 공원도 있고 생태계 보존 늪지(Marsh)가 있어 오리, 오파섬, 다람쥐 라쿤등의 야생동물 서식 터라 가끔 불시착한 부부오리를 열어놓은 차고 안에서 목격 해 온 터라 야생군단이 낯설지 않는 터였다.

그럼 그렇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증거를 확보해 두어  마음이 어느정도 놓였다. 드디어 황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과 훔쳐 먹은 범인을 잡았어요. 다람쥐였어요. 죄송해요". 공연히 생사람을 의심하고 범인 취급을 했으니 나는 편견에 젖은 환자 같았다. 조급한 결론에 조급한 행동을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목소리까지 기가 죽어 기어들듯 가늘어졌다. 다람쥐가 트레이닝 학교에 나가 타잔의 그네타기를 배웠을 리는 없을 터인데 나무에서 담벼락으로 건너뛰는 동작이 귀엽고 엄청 빨랐다. 속도 세상에 맞는 귀여운 범인이었다.

열매를 보면 나무의 정체가 파악되듯이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떤 나무의 후손인지 알게된다. 이때 열매는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가지에 매달려 있기만 하면 된다. 어떤 나무인지는 열매의 속성 그 자체가 밝히고 있기 때문에 사과는 그냥 붙어 있가만 허면 되었다. 굳이 사과 아닌 채 하지 않는다. 사과나무는 사과, 토마토는 토마토, 레몬은 레몬만을 맺는 자연법칙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흙이 사과 씨를 품으면 사과나무를 움트게 하고 사과 꽃을 피워 사과열매를 내놓는다. 이때에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란 토양에 좋은 말의 씨를 심으면 좋은 언어 말고는 다른 열매는 맺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말씀의 씨가  마음토양에서 발아될 때 씨와 토양은 상생(相生)으로 직결 되는 생명관계라는 깨달음은 사과나무가 나에게 가르쳐 준 과외공부였다.

내년부터 우리 집 사과나무는 다람쥐 부양가족까지 늘어나 뿌리는 깊이, 가지는 곧게, 이파리는 넓게 수액을 빨아올리느라 바빠질게 뻔하다. 인간 사회가 배워야 할 얼마나 아름다운 윈윈 생명질서인가
!  2-5-2-17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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