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그 날이 그 날이었다 / 김영교

2017.01.13 18:43

김영교 조회 수:56

그 날이 그 날이었다 / 김영교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깊고 가누기 힘든 슬픔이 찾아 올 때가 있다. 전화 통화중이었다. 줄이 툭 끊어지며 바람 한 줄기가 나를 데리고 공중으로 하염없이 올라가다가 쿵 떨어뜨린 그런 날이었다.

친구 병세가 나빠져 회복 문병에 매달려 있었다. 이럴 때 가장 위로가 되는 일은 그동안 방치되었던 나보다 더 시들어 축 늘어진 화초에 물을 주는 일이었다. 잡초를 뽑는 일은 산만한 내 생각을 몽땅 뽑아버리는 작업이었다. 자야가 떠나던 그날이 그랬다. 실성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런 상황에서 어찌 화분에 물을 주고 풀을 뽑을 수 있단 말인가. 저미듯 속이 아프고 아려 남편 몰래 눈물을 닦아냈다.

 

오늘 같이 무너지는 날, 나는 입을 닫았다. 이를 악물어 턱이 아파왔다, 화가 난 사람처럼. 그 날 23일은 생일을 며칠 앞두고 56년 절친 자야가 숨을 거둔 날이었다. 따스하게 목을 감고 있던 스카프 하나가 갑자기 바람에 휘날려 사라지면서 휭휭 허연 소리를 냈다. 나의 껍질을 벗겨내고 알갱이를 후려쳐 또 추려 나를 분리시켰다. 땅을 분명 밟고 있는데 나는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나는 연거푸 어쩌나, 어쩌나 어쩌자고 자야가 하면서 염치없는 낭패감은 극에 달했다.

 

슬픔의 방향을 거스르고 싶었다. 병원 퇴원 후 집으로 찾아 갔을 때 많이 야위어있었다. 병세가 악화되고 있었지만 그동안 잘 버티어 온 상황으로 봐 회복의 기미가 보였다. UCLA유명 암 전문 의료진을 소개받았고 새로 개발된 좋은 약도 실험 추천받았기에 가족을 포함해 우리는 낙관 시 하게 되었다.

 

많이 여윈 자야의 모습은 나를 슬픔의 장독 안에 가두었다. 때 마침 기도 부탁을 해왔다. 너를 살린 하나님이 자기를 왜 못 살리느냐고 항의하며 투정을 부렸다. 나는 속상함과 슬픔에 잠겨있기를 거부하고 밤 9시를 매일 기도시간 정했다. 나는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한 체 그분의 의중을 더듬어보게 되었다. 의도나 계획을 당장은 알 수가 없었다. 답답했다. 추스려주고 싶었다. 찾아가 함께 기도할 때면 나의 앙상한 손에 자야의 더 앙상한 손을 포개며 시선을 모아 기도에 마음이 합한 그 때가 떠오른다.

 

손에 잡히는 게 없고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했다. 만만한 곳은 뒷뜨락이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머리 무게가 이렇게 무거운 거구나. 간신히 뒤뜰에 내려섰다. 눈을 감고 비어있는 공간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그동안 나의 무관심이 키운 잡초를 나는 뽑기 시작했다. 손 움직임에 따라 마음이 같이 뽑혀 가주기를 바랬다. 시들어 있는 꽃에 물을 주고 자야의 죽음을 받아드리려 마음을 다잡았다. 속마음은 부르짖고 있었다. 다음 주 부활절을 끼고 장례식은 일주일 후로 아! 고통은 없고 쉼만 있는 그 곳으로 이곳 동창들 중에 일착으로 갔구나! 믿어져도, 찾아가도 너는 없고 만질 수도 함께 웃을 수도 없으니 너무 속상하구나!

 

3년 전 50주년 서울 방문 때 우리는 호텔 방을 함께 썼다. 잠 잘 자는 나를 부러워하며 자야는 바튼 기침으로 잠을 설쳤노라했다. 그게 시발점이었다. 3년을 앓고 있는 폐암에 이번에 지독한 폐렴이 덮쳐 자야는 회복되지 않았다. 3월 23일 1시 45분 하나님 품에 안겼다.

꽃에 물을 주는 시간은 죽음을 받아드리는 생각 전환의 시간이었다. 맨발 작업이니 맨손도 기꺼이 거든다. 잡념을, 슬픔을, 고민을 무념으로 대치, 슬픔을 객관 시 하게 해주는 시간이길 바랬다. 고요와 열중, 몰입의 시간에 맨발로 다가갔다. 신발 벗은 젖은 맨발이 까칠까칠한 바닥을 비빌 때가 물과 발바닥 접촉점에 어이없음이 엉켜 붙었다. 꽃에 물을 주다가 발을 씻는 사람은 슬픔도 쉽게 씻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추스르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깨달음이 왔다. 생명차원에서 절대 필요하다고 느꼈다. 깨끗해진 발을 바라보거나 그 시원한 느낌, 물 먹은 화초를 바라보는 일도 힐링 효과가 있는 듯 그 기운이 몸에 스며들어 슬픔이 수리가 되고 있는 시간이었다.

 

자야와의 작별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앞서고 뒤서고 그리로 가고 있는 진행형일진대 자연스레 받아드리는 게 순리라는 깨달음이 왔다. 슬픔에서 털고 일어나는 일, 먼저 간 망자가 남은 자에게 바라는 희망사항 아닐까. 우리는 그 길을 피할 수도 없고 한번은 꼭 지나가지 않는가.

 

뒷뜰 풀을 뽑고, 물을 주고 비료를 섞는 일, 총체적 생명을 가꾸는 일은 슬픔을 배척하는 일이 아니고 슬픔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받아들임이었다. 바로 나를 세우고 동시에 살리는 일이었다. 슬픔에 푹 잠겨보면 그 다음에는 이겨내는 힘이 생기는 게 삶의 비밀이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대상을 찾아 나의 발걸음은 더듬어 옮겨 갈 것이다.

 

살아가노라면 <사는 일> 만큼 빛나고,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신나고,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날이 궂은 날 기운 없는 화초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너를 돌보랴? 오늘도 나는 화분에 물을 주며 대화를 한다. 이 작은 식물이 덩치 큰 사람을 위로하고 바르게 생각하도록 해주다니. 그 관계성 신비에 나는 압도당했다. 속이 상하거나 화가 치밀면, 또 너무 바빠서 행여나 사는 의미를 잊게 된다면 잠간이라도 슬픔에 젖어 볼 일이다. 슬픔을 거부 않고 오히려 슬픔 속에 들어가 함께 할 때 내가 회복되고 있었다. 생명력이 전이되어 오는 감이 왔다.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가족이다. 축 늘어지고 메말라 시들어버린 화초가족과 느낌으로 소통하고 애정과 관심을 쏟는 일, 그 만큼 돌아오는 깨달음과 의미도 컸던 그날이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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