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Oldies but Goodies ..

Ode to joy..


시인/ 파블로 네루다


전에 나는 고통스러운 사랑에 붙잡혀 인생을 살았고,

어린 잎 모양의 석영(石英)조각을 소중히 보살폈으며

눈을 삶에 고정시켰다.

너그러움을 사러 나갔고, 탐욕의 시장을 걸어 다녔다,

아주 은밀한 시샘의 냄새를 맡으며, 가면들과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적대감을 들이마시며.

나는 저습지들의 세계를 살았다.

그 돌연한 꽃, 흰 나리가 그 떨리는 거품 속에 나를 삼키고

발을 옮길 때마다 내 영혼이 나락의 이빨 속으로 빠져 드는 곳.

내 시는 이렇게 태어났다. 어려움 속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형벌처럼 고독에서 벗어나면서, 또는 뻔뻔스러운 정원에서

그 가장 신비한 꽃을 숨겼다, 마치 그걸 묻듯이.

이렇게 깊은 수로에 사는 검은 물처럼 격리되어

- 시집『네루다 시선』(민음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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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파시즘에 저항하며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 것은 

그 이유로 인해 그를 평생 가시밭길로 걷게 했을지라도 당연한 시인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렇게 불태운 삶이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빛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사회적 책임을 피하지 않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은 일종의 본분이며 의무이고 양심이다. 그럼에도 가끔 시인이 시나 쓸 일이지 

왜 현실정치에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느냐는둥 웃기는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어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히는데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미래 좌표를 설정해야한다는 주장마저도 정치 편향이라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한다. 삶과 정치를 변별치 못하는 딱한 사람들이 수적 우위를 점하는 한 천박한 사회를 벗기란 난망한 일이다. 시인에게 분노조차 거세하라며,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시나 쓰라고 몰아세우는 사회에서 

과연 '신비한 꽃' 한 송이 피어낼 수 있을까?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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