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 아침에- 덧버선 같은 사람 - 3/6/2017

2017.03.06 17:43

김영교 조회 수:180

덧버선같은 사람 - 김영교

 

눈에 뜨이는 손이 입는 옷이 장갑이면 눈에 뜨이지 않는 맨발이 입는 옷은 버선이다. 둘 다 기능면에서 맵시보다 손과 발을 보호하기 위한 건강차원이 아니었나 싶다.

 

매주 수요일 마다 만나는 소 구릅 모임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쉰다. 여름 방학 때와 연말연시 때다. 휴무 다음 첫모임은 주로 선배님 댁 초대로 시작된다. 한 가지 목적으로 모이는 이 소 구룹은 리더가 있고 진행자가 있다. 매주 나누는 점심 식사는 자발적이며 편한 시간과 날짜를 정해 순번이 잘 돌아간다.

 

그날도 한 달 겨울 방학을 끝내고 새 만남의 시작을 위한 단합모임이었다. 아주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그 댁으로 가는 발길은 소풍가는 초등생 기분이 된다. 


그 댁 대리석 현관 입구에는 여러 켤레의 실내화 슬리퍼가 대형 사기항아리에 잔뜩 들어있었다. 찬 바닥을 실내화 슬리퍼가 대신 감당해 주었다. 그날도 들어서자마자 눈에 뜨인 것은 각가지 색깔의 면 덧신이 수 십 켤레 준비 되어있었다. 스리퍼 실내화를 대신하는 것으로 반으로 접혀 곱게, 부피도 매우 작았다. 주인댁은 골라 신고 그리고 가지고 가라신다. 원하는 색깔별로 더 골라 덤으로 가지고 가라신다. 신었던 것을 벗어놓고 가기도 민망했는데 그렇게 해결해 준 덧버선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선물'이었다.

 

결례되는 맨발, 발을 감싸는 슬리퍼도, 버선도 고마운데 그 발의 겉옷 버선을 지키는 덧버선의 미덕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 이후 나는 남의 집 방문 시 늘 지참한다. 가지고 다니기도 간편한 약식 실내화, 그 덧버선의 부피나 무게가 별것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몸 제일 하단에 붙어있는 발, 움직이고 싶을 때 언제던지 거절않고 따라와 준다. 한 뼘으로 전신의 몸무게를 지탱해주는 발, 당연하게 생각하고 보호해주고 고맙게 여긴 적 한번도 없었는데 늦게나마 선배댁 덧버선이 스승이었다.

 

모두의 건강을 염두에 둔 식탁 역식 덧버선 상차림이었다. 기름진 육류를 피해 생선과 해초, 건강밥부터 국도 반찬도 모두가 짜지도 달지도 주인행세 하지 않는 보조적 간이 아주 훌륭한 상차림 속에 숨어있었다. 건강 차며 그리고 후식 까지 신경 쓴 흔적이 우리 일행 허기진 입맛에 보조적인 덧버선 채식 반찬들이 환하게 불을 켰다. 


경건의 시간을 선두로 즐겁게 대화하며 큰 소리로 노래하며 마음껏 웃으며 기쁨의 사귐을 가졌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눈에 뜨이는 손장갑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 어느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양말도 버선도 아닌 보조적인 간이 기능의 덧버선 봉사만 하는 사람도 있다. 덧버선 자신은 맨 밑바닥에서 더러운 먼지를 밟고 뭍히며 발을 보호하는 그 역할에 만족한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그 덧버선의 쓰임새가 마냥 새롭게 다가왔다. 


발을 보호하는 버선, 그 버선을 보호하는 덧버선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덧버선 같은 사람, 선배님의 선물 그 덧버선으로 인해 그 의미에 눈을 떴다. 무척이나 무관심했던 나의 발에게 ‘너, 정말 수고 많구나’ 쓰다듬고 잘 간수하리라 마음먹으며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살펴본다.

 

'이 아침에' 중앙일보 3/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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