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꿈꾸는 빈 통/시집

2006.01.31 11:23

김영교 조회 수:688 추천:114

<너 그리고 나, 우리> 시집 나에게는 소중한 통 두개가 있었다. 밥통과 젖통이다. 거스름 계산에 굼뜬 나는 <밥통>이라고 늘 놀림을 받았다 그 후 살아남기 위해 나는 암(癌)씨에게 밥통을 내주었다 가슴이 풍만하지 않아도 젖이 잘 돌아 시어머니 앞에서도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곤 했는데 “아들 둘 건강한 게 다 에미 덕이다” 시어머니는 지금도 말씀하신다. 지금 나의 밥통은 없어지고 젖통은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부끄럽지 않다 둘 다 생명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귀하다, 무척 귀하다 어느 날 퇴근길의 이웃 친구에게 밑반찬 좀 싸느라 부엌 한 구석에 놓여있는 김치통과 반찬 통들을 둘러보았다 세상에는 통들도 참 많다 냄새나고 더러운 쓰레기만 받아 담는 쓰레기통이며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채곡채곡 받아 담는 우체통까지 언젠가는 사랑이 채워져서 누군가의 바램, 그 크기만큼 요긴함에 쓰일 기다림의 빈 통들 밤마다 나는 꿈을 꾼다. 밑창에 질펀한 탐욕의 찌꺼기 말짱하게 비워내는 빈 통의 꿈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0 그리움은 새 김영교 2006.03.06 432
189 날개짓처럼 투명한 것에 대하여 김영교 2006.03.06 393
188 어머니 강 김영교 2006.02.03 430
» 밤마다 꿈꾸는 빈 통/시집 김영교 2006.01.31 688
186 어느 아름다운 재혼 김영교 2006.01.30 612
185 전화 응답기 김영교 2006.01.25 387
184 부토(腐土) 김영교 2006.01.19 415
183 길 I 김영교 2006.01.18 449
182 신호등 김영교 2006.01.16 694
181 귀천 김영교 2006.01.06 353
180 형체도 없는 것이 - 4 김영교 2006.01.04 525
179 형체도 없는 것이 - 3 김영교 2006.01.04 337
178 형체도 없는 것이 - 2 김영교 2006.01.04 333
177 형체도 없는 것이 - 1 김영교 2006.01.03 353
176 게으름과 산행 김영교 2006.01.03 503
175 발의 수난 김영교 2006.01.03 631
174 초록이 머무는 곳에 김영교 2006.01.02 437
173 눈이 되어 누운 물이 되어 김영교 2006.01.02 299
172 연하장 설경 by 김영교 김영교 2006.01.02 363
171 소야등 김영교 2005.12.26 258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3
어제:
35
전체:
648,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