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 수난

2006.01.03 06:10

김영교 조회 수:631 추천:104

얼마 전에 작은 모임이 있어 참석했다가 여러 시선 앞에서 그만 넘어져 발을 삐었다. 끝자리에 앉았다가 일어서서 첫발자국을 내 딛는데 턱이 진 바닥이 평지로 보여 맥없이 앞으로 픽 쓸어졌다. 믿어지지 않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괜찮다며 내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불과 1시간 전에 한의사한테 가서 감기 끝에 윙윙 우는 귀를 치료받고 왔기에 또 달려가기가 쑥스러워 얼음찜질하고 파스 부치면 괜찮겠지 그렇게 혼자 진단 처방 내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친 쪽이 하필이면 오른발이라 운전하는데도 새큰거리며 통증이 느껴졌고 띵띵 부어 올라와 신발을 신기가 거북했다. 아픈 쪽에 몸무게를 주지 않으려니 저절로 절룩거리며 걷게 되었고 양 발이 정답게 몸무게를 반씩 분담해야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 너무 아팠다.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고 나니 더 붓고 통증이 더 심해왔다. 푸르퉁퉁한 멍이 발뒤꿈치에서 발등 전체를 덮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후배가 콩나물국에 생선을 구워오고 한의사한테 가는 운전을 자청해왔다. 이웃사촌이라 했던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도 좋은 이웃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한 것도 삔 발 덕분이었다. 발을 몸보다 높게 하고 쉬었다. 정원일이나 세탁일, 부엌일이며 장보는 일등 모두 서서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첫째 보행에 문제가 생기니깐 기본이 흔들리고 있었다. 애써 얼음찜질도 했고 덕지덕지 파스를 부치는 등 민간요법을 다 동원했다. 남편은 X-Ray를 찍어볼 것을 권고했다. 나는 속으로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하고 마음에 두지 않았다. 붓기가 가시지 않고 아파 시인 한의사를 찾은 것은 그 다음 날 11시쯤이었다. 아들 또래의 젊은 인턴들이 수하에 여러 명, 들락거리며 임상에 임하고 있었다. 실력 있는 교수법이 좋고 인간관계가 원만한 인품 때문에 인기도가 높다고 시인이 자리를 비운 잠깐사이에 인턴이 귀띔을 해주었다. 문득 작년 일이 떠올랐다. 그 때 시인들의 일행은 흔들리는 데스 벨리 나드리행 버스에 탑승하고 저마다 시상에 잠겨있을 때였다. 피가 부족한 나는 멎지 않는 코피가 쏟아지는지라 휴지밖에 없어 혼자 끙끙대며 솜 대신 코를 털어 막는 등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부드러운 손길이 다가오더니 내 머리를 조심스레 안고는 뒤로 젖힌 후 침을 꽂아주었다. 누군지 몰라도 옆에서 보기가 딱했던 모양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는 고마움에 나를 고스란히 맡겼다. 무엇보다도 남을 배려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그의 손끝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어 나는 쉽게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침구를 비상준비 해온 것 만 봐도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어졌다. 그 후 지금 까지 다시는 코피가 터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가 시인인줄만 알았지 한의사 교수인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때부터 말수가 적은 그 젊은 시인 한의사를 유심히 지켜보며 건강에 관한 토막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발설할 때 마다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 후 지금까지 좋은 관계의 우정을 키워가고 있다. 발 때문에 찾아간 나에게 이것저것 병력을 물으며 상담까지 해주는 그는 보기보다 가슴이 넓고 따뜻한 인간이었다. 시침하고 치료비도 안 받겠다고 해서 한동안 멍했는데 나는 근처에 사는 문우 혜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하며 웃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으로 이어갔다. 발을 다친 그날, 돋보기안경을 낀 내 시력에 결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빈혈 때문일 수도 있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 사이를 우리는 얼마나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래서 사고가 없는 게 고맙고 오히려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발을 다치게 해서라도 바삐 돌아가는 나의 일상에서 나를 빼 내어 느슨하게, 쉼의 숲을 거닐기도 하라는 메시지라고 깨닫게 되었다. 발을 다침으로 거동에 제한이 따랐고 이때 나를 돌아보고 나의 건강을 점검하도록 기회를 얻은 것이 고마웠다. 건강관리는 자신이 해야 하고.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각자의 몫임을 확인한 셈이다. 삶의 속도를 늦추라는 신호를 빨리 깨달을수록 유익함이 큰 것으로 다가온다. 그런대로 손을 빨리 써 지금은 완치되었다. 신통력을 믿어 주위의 친구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시인 한의사와 더욱 친밀 해질 수 있었던 것도 다 발을 다친 환자였기에 가능했다. 아픔에는 늘 불편과 손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친구를 얻었으니 얼마나 삶의 큰 보탬인가 말이다. 병이나 부상, 어떤 형태의 사고나 상처들, 모든 위기에는 삶을 Uplift시켜주는 그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담고 있어 겪고 나면 그만큼 성숙해지게 된다. 양 발 아닌 한 “발을 다쳐 감사할 뿐입니다.” 바로 그런 심정이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말씀이 오늘따라 절절하다. -한국일보-

전 악장 이어듣기


[1악장] Allegro maestoso (09:23)



[2악장] Adagio ma non troppo (08:43)



[3악장] Rondo. Tempo di menuett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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