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과 가난 / 김택근
2011.02.14 07:58
“문인들은 가난하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 어머니처럼 자상했던 작가 박완서 선생이 남긴 마지막 당부이다. 은유적이면서도 향기로운 언어로 자신의 최후를 장식할 수도 있었겠지만 선생은 문인들의 가난을 걱정했다. 사실 문인들은 거의가 가난이 뼛속까지 번져 있다. 문인들의 술자리가 유독 긴 것은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기실 선뜻 누군가 술값을 치르지 못하기 때문임을 선생은 아셨다. 예나 지금이나 문인은 가난하다. 글로는 세상을 뒤흔들어도 돌아서면 이내 세상에 버림을 받았다. 글이란 독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 어느 시대건 문명(文名)을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글만을 팔아서는 신발 한 켤레, 옷 한 벌 제대로 살 수 없는 현실이다. 글쟁이란 자부심으로 가난을 내쫓아보지만 궁핍은 현실이다. 근·현대사의 천재 문인들도 가난으로 스러져갔다.
작가 김유정(1908~37)은 <동백꽃> <봄봄> 같은 단편을 남기고 스물아홉에 세상을 떴다. 사람들은 그를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홀연 무지개처럼 사라졌다고 했다. 춘천시 외곽에 있는 김유정문학촌은 그의 고단한 삶을 띄엄띄엄 전시해 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가난’이 눈에 들어온다. 말년엔 폐결핵이 그의 심신을 파괴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가슴을 훑는다. “필승아, 나는 돈 백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살아날 것 같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하지만 김유정은 끝내 닭국물을 입 속에 흘려넣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새해에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문인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다세대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32). 그를 추모하는 눈물이 인터넷을 흠뻑 적시고 있다. 췌장염 등을 앓던 그는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작가는 이웃집 현관 문에 이런 쪽지글을 남겼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슬픈 글은 없을 것이다. 이웃집 사람은 며칠 집을 비워 그 쪽지를 보지 못했고, 젊은 작가는 숨져 있었다.
김유정이 “돈 돈, 슬픈 일이다”라고 쓴 지 64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고 애원하고 있다. 문인들은 언제까지 가난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글 짓는 일이 슬픔이어야 하는가.
Les Larmes Aux Yeux(흘러 내리는 눈물)
출처: 경향신문>오피니언>김택근 논설위원. 201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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