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게

2003.08.21 10:06

박혜숙12 조회 수:92 추천:3

[박혜숙12님께서 남긴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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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은 흔히 농민시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내가 그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
그의 시는 희고 깨끗한 쌀이요,
밝고 환한 꽃이요,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덮는 눈이요,
펄펄펄 날리는 눈을 맞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낮게 드러누운 김제 만경의 들판이다.
이것이 내가 김용택의 시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신경림..







<꽃사과 나무 있는 집>





내 사랑은...




아름답고 고운 것 보면
그대 생각납니다 .
이것이 사랑이라면
내 사랑은 당신입니다.

지금 나는 빈 들판
노란 산국 곁을 지나며
당신 생각합니다 .

빈 들판을 가득 채운 당신
이게 진정 사랑이라면
당신은 내 사랑입니다.


백 날 천 날이 아니래도
내 사랑은 당신입니다 .

.
.
.
.














<카멜의집>



그대, 거침없는 사랑



아무도 막지 못할
새벽처럼
거침없이 달려오는
그대 앞에서
나는
꼼짝 못하는
한떨기 들꽃으로 피어납니다.
몰라요 .몰라.
나는 몰라요.
캄캄하게
꽃 핍니다.
.

.
.
.
.













<그녀의 집... 수선화>


그 여자네 집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깜박깜박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은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안하게 햐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 아홉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시:김용택
그림:정명화
노래: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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