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2008.01.01 02:31

이윤홍 조회 수:153 추천:32



  누님,

  올 해는 무(戊)해 이지요.
  천간의 제 오위, 다섯 째 천간 무, 오전 세시부터 다섯시까지를
  가리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무엇이나 다 아는 사람들이 무엇이나 다 모르는 것은 무(戊)가 그냥
  무가 아니라 속이 빈 무라는 것이지요.
  잘 보면 정말 속이 비어 있지요.
  무해에는 그 속을 채워야 진짜 무해가 이루어 집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나름대로 그 속을 채우려고
  올 한 해도 애쓰며 앞으로 나가겠지요만은
  시인은 오로지 시(詩) 하나로 그 속을 채우기 위하여 애를
  쓸 것입니다.

  누님,

  단 하나의 시,
  영원히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시를 얻기위하여 수도없이
  많은 불면의 밤을 우리는 얼마나 걸어왔던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하나의 시에 목숨을 매다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주위의 눈물을 씻어주는 작은 손수건 같은 시, 우리
  주위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같은 시 하나가 더 절실히 필요
  할 때인것 같아요.

  누님,

  새해에는 누님의 사랑가슴이 절절히 담겨있는 시들로 무속을 하나
  가득 채우세요.
  그리하여 올해의 어느 가을날, 한해를 지나가던 이웃들이 알차게
  열매맺은 누님의 아름다운 시(詩)들의 정원안에서, 안식과 평강과
  사랑의 나무그늘아래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며칠전, 비 오고난, 늦은 오후, 산길로 들어서서 걷다가 만난
  고사목(枯死木), 그 앞의 물웅더이. 땅밖으로 나와있는 뿌리들.
  그리고 저 불타는 노을.


  고사목(枯死木)


  뼈속의 한 방울 물기마져 소진(燒盡)하고
  한 천년 하늘을 우르렀다
  뜻이 간절하면 비로소 궁극(窮極)에 이르는가
  비 온뒤 산 비탈진 겨드랑이 바로 앞
  물웅덩이 생겼다
  얼마나 기다렸으면,
  거꾸로 머리박고 온 몸으로 들이키고 있다
  천천히, 후-불며 쉬어마시라
  나뭇잎처럼 둥-둥- 맴도는 구름 한덩이
  말라버린 갈증이 목타올라 그마저 들이키는
  제 몸보다 더 어두운 나무그림자

  목마름 갈앉기론 오호, 아득타! 무극(無極)인데
  하루가 멀다하고 웅덩이 말라간다
  꾸덕한 땅 끝으로 번지는 흐릿한 물기운에
  삐죽죽 일어선 저 고사목 뿌리, 뿌리들
  이 저녁,
  장엄노을,
  화엄(華嚴)의 하늘가,
  불보다 더 뜨겁게 더듬고 있다

  무해에 무속을 들여다보고있는 시렁쥐
  이 윤 홍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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